마음으로 이어가는 것
천국보다 아름다운 그곳에서 당신을 재회한다면
“넌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 같다."
연애할 때 남편이 자주 하던 말이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불편한 일이 있어도 감정보다 미소를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조금의 손해쯤은 그냥 넘겼고, 어긋난 마음은 스스로 둥글게 다듬곤 했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은 “너 착한 아이 콤플렉스 있는 거 아냐?” 하고 묻기도 했었다.
평화주의자가 살아가는 세상은 둥글고 말랑말랑한 소프트 푸딩 같았다. 화 대신 미소로 덮는 법이 익숙했던 나는 덮고 또 덮다 보니 감정의 색은 연보랏빛처럼 점 점 옅어졌다.
결혼하고 나서는 파스텔 연보라 색은 짙은 보랏빛이 되어갔다. 보통의 부부가 그렇듯 우리도 사소한 것에 티격태격하고, 아웅다웅 감정을 내보일 때가 있다. 어쩌면 원색의 색감을 그대로 내보이는 존재가 부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 부부는 얼마 전, 결혼 11주년을 맞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 건너온 우리는 자연스레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이제 사랑 소설의 문장들은 어질어질한 설렘보다 익숙한 숨결로 바뀌었고 오지 않을 것 같던 앞자리 숫자 ‘4’도 제법 친근해졌다.
삶이 늘 웃음으로만 채워질 리 없었다. 갑작스러운 시련과 어둠이 덮칠 때마다, 그 시간, 내 곁에는 늘 남편이 있었다. 칠흑 같은 터널 속에서도 함께 걸어준 이가 있었기에 나는 이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익숙함이 주는 안전함, 가장 편안한 친구, 서로의 유일한 보호자. 11년의 시간은 그렇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모자람을 채워가는 세월이었다.
결혼 11주년을 맞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던 어느 날, 우연히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천국에 가면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고 살고 싶은 나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설정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따뜻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난 주인공들이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간 낙준(손석구)은 해숙(김혜자)을 향해 말했다.
“여보, 나 이제 이렇게 달릴 수도 있어~!”
평생 걷지 못했던 낙준은 건강한 두 다리로 달리며 환한 미소로 등장한다. 평소 살아가면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던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아픔과 고통과 질병조차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설정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낙준의 달리던 모습은 단순한 회복의 장면으로만 닿지 않았다. 그건 이 땅에서의 결핍이 더 이상 그를 묶어두지 못한다는 해방 같았다.
만약 나도 천국보다 아름답다는 그곳에서 당신과 재회한다면, 꼭 다시 그렇게 만나게 된다면, 당신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그곳에서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때는 그대를 편안한 조수석에 앉게 하고 내가 운전대를 잡고 싶다. 늘 운전하며 내 발이 되느라 소홀했을 창밖 풍경에 찬찬히 빠져들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다가 당신이 스르르 잠이 들면, 그대가 그랬던 것처럼 음악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작은 턱 하나도 평지처럼 조심스레 지날 것이다.
당신이 했던 것처럼 그렇게 어디든 데려다주고 싶다. 그대의 피곤을 절반으로 나눠 가져가고 싶다.
그러다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노을 지는 해변을 거닐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발그레하게 하늘이 물들어 가는 자연 앞에 시간이 멈춘 듯 아주 오랫동안 서 있고 싶다. 제 몫의 하루를 살아내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앞에 설 것이다. 해사한 미소로 눈 맞춤하며 일몰의 순간을 영원처럼,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렇게 머물다 가고 싶다.
글 쓰는 사람들은 첫 문장을 참 소중히 여긴다. 그 한 줄에 시간과 마음을 가장 많이 쏟는다고 한다. 가장 치열하지만, 가장 사랑스럽고, 맘 같지 않아서 애를 태우다가도 사무치게 그립고, 때로는 덤덤하지만 버선발로 뛰어나가 가장 환대하고픈 사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재회하고픈 그대는 나의 첫 문장과 닮았다.
나의 빛나는 첫 문장, 당신이 나의 첫 문장이 아니었던 시절은 단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