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어둠의 경계
눈물에는 색이 없다.
그래서 때로는 정확하게 해석하기 어렵다.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감정에는 정확한 이름을 일일이 다 붙이기 어려울 때도 많지 않은가? 웃음과 슬픔, 환희와 분노, 빛과 어둠을 모두 품을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한 색. 그러나 분명한 감정의 색. 나는 그것을 눈물이 품은 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빛과 어둠. 그 경계가 모호했던 시간 속에 서 있던 때가 있었다. 망막이 떨어지는 의료사고 후 꽤 오랜 시간 응급수술이 이어졌다. 수술 후 나는 의사에게 당분간 고개를 들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렵게 붙여 놓은 망막 신경 세포들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인 자세로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때부터 고개를 숙인 채 지내야 하는 묘기에 가까운 하루가 펼쳐졌다. 대화를 할 때는 물론,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마치 경기에서 반칙을 한 선수처럼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았다. 나는 그 규칙을 제법 잘 지키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 자세가 편할리 없었다.
목이 빠질 듯한 고통은 어김없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드러났다. 남편은 연신 파스를 목에 붙여주며 내 곁을 지켰다. 함께 경기에 뛸 수는 없었지만, 그의 존재는 그 시간을 통과하는 데 큰 의지가 되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다시 보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버텼던 걸까?
하루에 딱 두 번 유일하게 고개를 들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담당 의사를 만나는 시간. 온몸의 모든 세포가 간절하게 응원하며 탈출구가 열리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탈출 게임에서 빛 속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아니면 끝없는 어둠 속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판가름 나는 결전의 순간을 맞았다. 망막 전문 의사는 겨우 들어 올린 내 얼굴 위로 말 했다.
“눈을 크게 떠 보세요. 이 빛이 보이나요?”
의사는 필시 환한 펜라이트를 내 동공에 비추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안간힘을 다해 빛을 찾았다. 그 간절함 때문인지 어떤 날은 빛이 보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정직한 내 눈동자는 끝내 그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정적이 흘렀다. 차가운 공기만 분주하게 우리 사이를 오갔다. 의사는 남편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젓는 듯했다. 남편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고개 숙이고 있느라 많이 힘드셨죠? 이제 들어도 됩니다.”
의사의 건조한 말이 귓가를 스쳤다. 그 말은 곧 ‘탈출 실패’의 선언이었다. 빛을 찾는 사투는 연장전도 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얼마나 더 오래 이 어두운 미로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울면 안압이 올라가 치료에 방해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현실이 너무 꿈같기도 했고, 비현실적으로 이어지는 전개에 찾아오는 이름 모를 복잡한 감정들이 쉴 새 없이 새어 나와 분주한 손놀림으로 눌러 막기 바빴다.
그동안 소리를 내지 못했던 울음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겨우 막고 있던 수문이 열리자 폭포수 같은 슬픔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 소리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삽시간에 병실을 삼키고 복도까지 밀려나갔다. 남편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내 슬픔의 파도가 잔잔해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빛을 잃은 눈에서 오랫동안 눈물이 흘렀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듯,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눈물이 말랐을 리 없었다. 색이 없는 눈물은 흑과 백 그 사이 미묘한 회색빛 금을 밟고 서 있었다. 한 발 내딛지도, 다시 뒷걸음치지도 못한 채 미련을 깔고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눈물은 말보다 솔직한 속도로 반응하는 마음의 언어다. 기쁨과 슬픔, 시작과 끝, 빛과 어둠이 맞닿는 자리에서 가장 눈부시게 피어나곤 했다. 색이 없는 눈물에는 내가 걸어온 계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잃어버린 것과 여전히 남아 있는 것, 끝나버린 것과 다시 시작되는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건 어쩌면 눈물에는 색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눈물 위로 유난히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사람이 쏟아내는 것들 중 가장 빛을 닮은 것이 눈물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신혼 3년 차의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