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옐로우-금요일마다 다녀가는 파티셰

노란 봉지에 담기는 사랑

by 유니크한J


남편과 나는 반신반의하며 금요일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여전히 내 하루는 무채색이었다. 호우주의보가 있던 그날은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집 안의 고요한 공기는 고립이라는 무게감을 품은 듯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차게 때리는 빗방울 소리만 우리와 세상을 유일하게 잇는 연결 같았다. 그래서일까? 사나운 폭우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잠시 후, 문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는 밤 열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후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손잡이를 더듬으니 물기 묻은 봉지 하나가 묵직하게 걸려 있었다.


내 삶은 관계 속에 둘러싸인 나날들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마다 다양한 모임이 있었고, 요일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달랐으며,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더 얻고 돌아오는 쪽이었다.


그랬던 내가 사람을 피하고 싶은 시기가 있었다. 내 정체성처럼 힘주어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을 뺐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에 힘을 뺀 건 처음이었다. 딱 의료사고가 난 후부터였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뱉어내는 위로의 언어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도무지 내려오지 못했다. 위로라는 말은 바람결에 새털같이 흩어졌다. 나를 향해 집중된 안쓰러운 시선만 겹겹이 쌓여 소화되지 못한 채 명치에 걸려 있었다.


나는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인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영혼의 날개가 꺾이는 듯했고, 자유를 빼앗긴 채 새장에 갇힌 새가 되는 기분이었다.


병원비에 보태라며 친구들이 보내온 정성도, 이웃들이 건네는 관심의 마음도 그런 이유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증을 찍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호의는 감사함과 무력감을 한꺼번에 몰고 와 마음을 흔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보는 건 어때? 여보라고 늘 주는 자리에만 서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그대로 받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교만일 수 있어.”


새장 속에 갇혀 움츠리던 내 존재에 균열을 일으킨건 남편의 말이었다. 대한민국 K장녀로 태어나 늘 내가 주고 내가 먼저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 익숙했다. 사회 속에서도 마음의 빚을 지지 않는 쪽에 서는 것이 편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진심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보자는 남편의 도전 앞에서 나는 조금씩 흔들렸다. 사랑을 온전히 받아 본 사람만이 언젠가 그 사랑을 다시 나눌 줄 안다는 말을 그는 덧붙였다.


이웃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겠다고 결심하자 휴직 후 재활의 시간 동안 우리 집 대문 손잡이는 우리 가정과 세상을 연결하는 작은 통로가 되었다. 교회 이웃들이 반찬을 만들어 걸어두고 가기도 했고, 때로는 친한 친구들이 내 생각이 날 때마다 작은 선물을 걸어두곤 했다.


그런 나날들 중 매주 금요일이면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늘 다녀가던 분이 계셨다. 노란 빵 봉지에 다양한 종류의 빵들을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셨는데, 봉지를 집 안으로 들여올 때마다 열리는 작은 문틈 사이로 따뜻한 온기도 함께 들어왔다. 한숨과 절망의 공기로 눅눅했던 집안은 금요일만은 버터와 설탕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로 채워졌다. 그렇게 금요일은 우리 가정에도 작은 웃음이 들어서는 날이었다.


매주 다녀가는 파티셰는 동네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시는 교회 이웃이었다. 우리 가정의 사정을 들으시곤, 어떤 말도 더 보태지 않은 채 그저 빵으로 꾸준히 마음을 전해주셨다. 한 주도 빠짐없이 매주 찾아오는 노란 온기는 마치 우리 존재가 세상에 잊히지 않고 있다는 편지 같았다.


어느 날 우연히 이 베이커리가 소개된 글을 읽었다. 우리 가정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거나 위로가 필요한 곳곳에 직접 구운 빵을 꾸준히 전하고 계신다는 이야기였다. 인터뷰 속 그분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두드렸다.


“저는 빵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빵을 만드는 일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있어요.”


말보다 삶으로 다가온 이웃들의 온기는 볼품없이 쪼그라든 내 영혼을 다시 풍성하게 발효시켜 나갔다.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인생은 눈물과 한숨 섞인 반죽을 만들어내었지만 잊지 않고 다녀간 누군가의 발걸음은 이스트처럼 삶을 부풀렸다. 그렇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나갔다.


반죽은 인내에 가까운 시간을 통해 부풀어 오르고, 뜨거운 오븐을 통과해야 비로소 황금빛 옷을 입는다. 뜨겁고 괴로웠던 상실의 시간을 내가 버텨낼 수 있었던 건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았던 이웃들의 다정한 손길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에게 노란색은 단순한 밝은 색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색이며, 다정함을 입은 나눔과 연결의 색이다. 금요일마다 내 문 앞에 걸린 작은 마음은 서로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삶의 또 다른 방식이었다.


어둡던 하루를 기어이 들어 올린 나는 좀 더 단단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한 주를 버텨내고 마침내 맞이하던 금요일. 일주일의 끝자락까지 숨 쉬게 만든 건 역시나 사람이었다. 그토록 피하고 싶던 사람의 온기는 결국 내 삶을 다시 붙들 수 있게 만들었다.


재활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직장으로 복직하기 전날 베이커리에 들렀다. 매주 다녀가셨던 금요일의 파티셰는 마음 담은 선물과 편지를 건네는 나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 주셨다. 따뜻한 심장이 다른 이의 심장과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명치에 걸려 있던 애달픈 마음과, 나를 연민하던 감정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감을 느꼈다.


복직 후부터는 금요일마다 내가 직접 베이커리로 향한다. 이제는 내가 직접 사러 가는 빵이 우리의 노란 금요일을 채우고 있다. 먹음직한 빵을 진열하시던 베이커리 사장님께 수줍은 미소로 고백했다.


“저, 사실 단팥빵보다는 슈크림빵을 더 좋아해요.”


인자한 사장님은 내 말에 손에 들었던 단팥빵을 급히 내려놓으시고는 슈크림빵을 담아주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렇게 나의 금요일은 여전히 노란 온기와 고소한 빵 냄새로 따뜻하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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