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시작하다.
암이라니…. 나의 든든한 아빠가… 밉지만 사랑하는 나의 아빠가..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
위암이 전이가 되어, 간암으로 가버린 상태.
아니야. 아빠는 살 수 있어.
내가 정신 차리고 지금 병원 알아보고 하면
우리 아빠는 살 수 있어. 암, 그렇고말고!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데!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많은 큰 병원들의 혈액종양내과 의사들이 파업을 한 상태다. 최악이다. 어쩌지!
이리저리 연락하고, 여러 지인들에게 수소문하고 병원에 예약을 하고 당장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주변의 도움과 여러 차례의 기다림 끝에 아빠가 치료를 시작할 병원을 알아봤고
당분간 타 병원에 머물며 항암치료 전까지 체력을 유지해야 했다.
대학병원 치료를 기다리는 중에 강서구의 어느 한방병원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시설도 좋고, 음식이 잘 나오는 것 같아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아빠를 최대한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 고른 병원에서 일이 터졌다.
아빠의 장기에서 계속 피가 새고 있다는 것이다.
변의 색이 점점 좋지 않고 아빠의 상태가 좋지 않다.
이미 살도 많이 빠진 상태고 음식 섭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는 인천에서 소식을 듣고 아빠를 태워 응급실에 가려, 차를 끌고 출발하는 중이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사설 구급차를 병원 측에서 불렀는데 응급진료를 봐야 할 병원 이름을 잘못이야기하여
지금 도착한 구급차는 우리가 가야 할 병원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책임감 없이 사설구급차 번호를 주며, 이 급박한 상황에,
마음이 많이 어지러울 보호자인 엄마에게 직접 전화해서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돈을 다른 데보다 몇 배는 받으면서!
당장에 그 병원 측의 간호 과장에게 연락을 했다.
이러한 상황인데 지금 내가 인천으로 가고 있으니 저희 어머니 좀 도와달라고.
인천에서 출발한 나의 차보다, 응급실 근처에 있던 아빠의 응급차가 더 늦게 오긴 했지만
다행히 도착했다.
(후에 그 한방병원 원무과 과자이란 자와 통화를 했는데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무조건 본인은 잘했고, 배 째란 식의 말을 하기에
평소 때 같았으면, 그리 살렴 하고 넘어갔을 일을
나는 기어코 사과를 받아냈다. 여전히 그날을 떠올리면 아찔하고, 아직도 화가 치민다.)
이런저런 정말 우여곡절 끝에.. 아빠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이 신호가 아빠가 살려나보다 하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우리 몸의 부정적인 것들은 사랑으로써 치유할 수 있다고.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아빠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우리 가족 함께 여행 갔었던 때를 떠올려보라고
옆에서 이야기해 주었고,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평소에는 아빠와 가치관이 많이 달라 듣고 싶지 않을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빠가 굳게 마음먹고 다시 일어나 나와 함께 여행 가는 그날을 그려보며 말이다.
그날 이후, 간간히 쓰던 감사일기를 매일같이 쓰기 시작했다.
오롯이 아빠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