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떠난 뒤, 첫 번째 편지.
이천 이십오 년, 시월 십일 오후 아홉 시경
나의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만큼 밉기도 한 나의 아빠가 떠났습니다.
이제 더는 흘릴 눈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저의 아주 큰 오만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아빠를 만나러 오기 전에 마신 차일까요?
아니면 엊그제 많이 떠먹은 국일까요?
나의 아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의 육신은 여기에 남아 이제 곧 사라질 테지만
그의 영혼은 좋은 곳으로 향해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평생을 내 걱정만 하다가 본인 몸은 못 지키고
가버린 나의 사랑하는 나의 아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빠가 안방에서 자고 있는 것만 같거든요.
아니면 병원에서 열심히 엄마와 아웅다웅 다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빠는 내가 아플 때,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늘 곁에서 지켜주던 멋진 아빠예요.
그런데 나는 아빠가 아플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우리 아빠… 마지막 그 길이 너무 외롭거나 미운 마음이 가득하거나…
아프기만 하진 않았기를 바라요.
아빠가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호스피스에 누워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어요..
아빠! 하고 전화를 걸면 오야~ 하고 받아줄 것 같은데
이제 전화를 하면 엄마가 받아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아빠가 더 이상 내 메시지도, 전화도 받지 못한단 사실을..
조금은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해요.
내게 호래자식이라고 하지말지… 나에게 화내지 말지…
나를 노려보지 말고… 따뜻한 눈으로 한 마디만 더 해주지… 하면서요.
아빠가 마지막 가는 길, 우리와 정 떼려고 그러셨을까요…
나는 아빠가 점점 좋아지기를 바랐고, 그러고 있는 중인 줄 알았는데요..
아빠가 당신 스스로 오래 못살겠다- 하실 줄은 모르고 있었어요..
아빠, 이리되었든 저리 되었든…
이번생에 나와의 인연은 여기 까지였나 봐요.
그래도 내가 이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나의 심장에는 아빠가 살아있을 거예요.
나를 예뻐하는 아빠.
나를 믿어주던 아빠.
나에게 공주님~ 하던 아빠.
나와 단 둘이 돗토리 여행 가서 식사를 맛있게 하고 짓궂은 표정으로 사진 찍던 아빠.
엄마랑, 나랑 아빠랑 셋이서 간 첫 해외여행 대만..
두 번째 해외여행 베트남..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 제주도…
이럴 줄 알았다면 매년 더 열심히 해외로 갈걸 그랬죠…
아빠가 한평생 나와 행복하게 살 줄 알았나 봐요.
아주 건방지게도…
사랑하는 나의 아빠..
이제 좋은 곳으로 가서
아빠가 하고 싶은 거, 아빠를 위한 거 하고 살아요.
많이 고맙고, 많이 미안하고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해요, 안녕,, 나의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