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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10.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30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52


  

   

숙의 치유 중단한 지 6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문득 나는 0 선생에게 편지를 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예전에 숙의 치유 받았던 11-6입니다. 

숙의 치유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선생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늦게나마 전하고 싶었습니다.  

    

머리 자르고, 모자 쓰고, 선생님 뵀을 때가 생각나네요.   

   

상황은 여전히 시난고난 그렇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더 깊게 가라앉아 있지만, 

이제는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듯합니다.    

 

선생님, 그때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 유서가 아직도 선생님 진료부 자료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네요.^^ 

나중에 다시 숙의 치유 받으러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나는 0 선생과 딱 두 번, 숙의 치유를 했다. 그 짧은 만남에서 나름 시절 인연을 이룬 셈. 숙의하러 찾아갔을 때, 나는 유서 한 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적었다.      


“좀 더 따뜻한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엄마 억압과 통제를 벗어난 세상, 아빠 알코올중독과 폭력에서 자유로운 세상, 형제자매와 비교되지 않는 세상, 이런 일들로 말미암은 제 우울증을 사랑으로 치료해 주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좋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살고 싶지만, 결코 좋아질 리 없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뭐 더 긴한 이야기가 필요 없을 만큼 내 곡절을 압축했다. 단 한 가지만 더 말한다면 어머니 억압과 통제 부분이다.   

  

내 어머니는 평신도 직급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거대개신교회 신자다. 교회 활동하느라 늘 집을 비웠다. 게다가 어머니는 내게 신앙을 강요했다. 나는 0 선생에게 말했다.     

 

“끌려가듯 교회 나가서 기도하며 흘린 눈물은 모두 우울증으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를 피해 개신교 중독이 된 어머니가 나를 우울 중독으로 몰아넣었다. 어머니 적반하장은 ‘네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대학에서 인문학 공부하고 교회를 등졌기 때문이야’였다.   

   

0 선생은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어둠까지도, 해석·평가 없이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삶을 바꾸려는 수많은 사람이 실패하는 까닭은 받아들이지 않고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받아들이지 않고 바꾸려 하는 노력은 문제를 모른 채 답을 구하는 헛수고와 같다. 내가 단 두 번 숙의에서 변화 틈을 일군 힘은 바로 이 간단한 정리에서 왔다.   

  

“바꾸려면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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