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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Dec 02. 2024

좋네요: 재앙이네요

   

117년 만에 많이 내린 눈은 많은 가경(佳景)을 연출했고, 많은 재해도 일으켰다. 각자 선 자리에 따라 다른 눈으로 눈 덮인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출퇴근길에 200미터가 채 되지 않지만, 산을 넘는다. 연속 사흘 스노우 부츠를 신어야 했다. 처음 많이 내린 날 눈은 무릎 아래까지 쌓였고, 영상 낮 기온에 녹았어도 여전히 위험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디디고 간 곳은 결빙 상태로 변해 더 미끄러웠다. 스노우 부츠 신고 한의원 골목으로 들어서다가 환자 한 분과 마주쳤다. 그가 웃으며 말한다: 에이, 원장님 ‘오버’하신다! 나는 따라 웃으며 그냥 받아준다: 그러게요, 제가 좀 겁쟁이죠?   

  

아침 산길을 오를 때 내 또래 남자 사람과 만난 장면하고 맞물린다. 그야말로 눈 천지인 숲을 가리키며 그는 초면인 내게 마치 익숙한 사이처럼 말을 건넨다: 좋네요! 나는 따라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여 공감을 표했다. 아무 말 않고 지나가기가 뭣해서 맞장구를 쳐주면 좋겠는데, 막상 내 입에서는 영 다른 소리가 튀어나온다: 아이고, 재앙이네요!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살피지 못한 까닭은 조금 전에 본 버드나무가 눈에 어른대서다. 물 먹은 눈을 잔뜩 메고 휘어져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힘닿는 대로 눈을 털어주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죄지은 듯 맘이 아팠다.   

  

이 버드나무는 300여 종 버들 가운데 한국이 원산지인 Korean Willow다. 그래서 학명도 Salix koreensis Andersson이다. 내가 산을 올라 능선에 닿으면 가장 먼저 인사하는 나무다. 처음부터 분기가 되어 그렇지 외줄기였다면 거목 위상을 남김없이 드러냈을 기품 있는 나무다. 나는 나 자신을 버드나무라고 생각하며 오랜 세월을 살았다. 남들이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나는 그때도 마찬가지로 웃으며 그냥 받아줄 테다: 그러게요, 제가 좀 애니미즘이죠? 매일 아침 사람에게처럼 인사하고 어루만지는 존재가 곤경에 처했으니, 내 반응은 당연하다. 끝내 가지가 둘이나 부러지고 말았다.   

  

 

가지 넘어 본 줄기에까지 재해가 번져가리라 본다. 물론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끼는 여러 버드나무도 거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아예 통째 넘어진 소나무와 수양버들도 있었다. 이 작은 숲에서도 처참을 느낄 정도니 큰 숲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불가피한 일이고 인간이 뭐라 입댈 처지는 아니지만 나무를 사람처럼 대하는 나로서는 여간 아픈 일이 아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위로와 애도 숲 걷기를 해야 할 듯하다. 부러지고 넘어진 모습 그대로를 목격할 테니 말이다. 숲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인간 관리 손길에는 또 얼마나 애통해할까, 벌써 속이 쓰리다.   


   

평생 걸어온 공부 길을 돌아본다. 인간 공부 끝에 인간중심주의를 버렸다. 식물 공부 끝에 식물 중심주의를 버렸다. 곰팡이 공부 끝에 곰팡이 중심주의를 버렸다. 물 공부 끝에 물 중심주의를 버렸다. 먼지 공부 끝에 먼지 중심주의를 버렸다. 결국 원시대기에 가 닿았다. 여기가 종착지일까? 모른다. 그저 메타 사유를 거두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그 메타 사유를 좇아 살아갈 따름이다. 산하에 덮인 뽀얀 눈 위에서마저 메타 사유와 그 삶 여부는 갈린다. 어떤 처지에 놓일지라도 고유한 유(類)를 만들고 또 스스로 깨뜨릴 수만 있다면 삶은 불멸이다. 불멸은 버드나무 가지 하나에도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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