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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바이러스

by 강용원

광장에 열 번째 선다. 근혜 파면할 때 공식 집회 스물세 번을 꼬박 나가고 비공식 집회 두 번을 더 나간 것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명신이 부부 패거리가 저지른 사악한 죄가 박근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으니 단 하루라도 당겨지기를 빌고 빈다. 나도 늙었다. 손발이 시려서 견디기가 어렵다.

날씨가 매섭게 추운 탓도 있지만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빈속”이라 더 그렇지 싶다. 젖을 먹지 못하고 미음으로 연명했던 유아기 경험은 배고픔 견디는 힘을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서울 와 경험했던 소년기 겨울은 추위에 더욱 약해지도록 이끈 듯하다. 견디는 몸 부위 위기감이 서로 달라서가 아닐까.

내란 이후 우리 사회는 이른바 총체적 위기 한가운데 있다. 무엇을 위기라 하며 얼마를 심각하다 하는지는 각기 다를 테지만 정말 문제는 위기 진경을 드러내고 안전한 사회 전경을 맥락 입체성을 따라 드러내는 발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부역 학자는 많아도 반제 사상가가 없어서 그렇다.

광화문을 떠나며 깊은 시름에 잠긴다. 이 사태를 범주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향도하는 사상가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 도저한 식민성에 무릎이 꺾인다. 평범한 시민은 추위에 떨며 길을 찾는데 비범한 엘리트는 안온에 절어 납작한 쪼가리 정답이나 뿌려댄다. 천하에 잘난 기생충 종자다.

추위에 떨다가 몸 녹이려 걸친 소주가 힘에 부쳤는지 밤부터 콧물이 줄줄거린다. 코로나19 백신 단 한 번 맞지 않고도 난공불락이던 내 몸이 열 번째 광장에서 감기에 금 가는가. 아니다. 내란 바이러스 석열이-12·3에 감염된 게 맞다. 치료 약은 파면 처형밖에 없으니, 나으려고 다음 주도 광화문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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