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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May 15. 2024

그늘이 된다는 것

한희정 시조시인



벌써 등 뒤로 내리쬐는 햇살이 제법 따갑다. 산책길을 우회하여 가로수가 즐비한 길을 걸었다. 양쪽 나뭇가지들이 어우러져 긴 터널을 이룬다. 그늘을 차지하고 걷는 발걸음이 횡재한 듯 기분이 좋다. 조용히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서로 그늘이 되어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을 것이다.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친구와 지인과 스승과의 사이에서 그늘이 된다는 것. 문득 등나무 아래에서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짓던 스승과 제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친정아버지 제자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아버지를 뵈러 왔다. 해마다 방문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터인데 스승의 날은 빠뜨리지 않았다. 50년이 넘도록 머리 희끗희끗한 제자들은 열세 살 그 시간으로 돌아가 웃음꽃을 피웠고, 아버지 역시 그 시절을 회상하며 뿌듯한 시간이 되곤 했다. 거동이 불편해 힘이 들 무렵에도 제자들의 방문은 꾸준히 이어졌고, 어느새 작은 그늘은 큰 그늘이 되어 아버지에게 힘이 되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가 많던 친정집 마당에서 이야기꽃조차 푸르게 피어나던 시간은 필자의 마음속에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일이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 부디 부담스럽거나 달갑지 않은 날이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빠르게 변해 불안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갈수록 삶을 힘들게만 느끼고 여차저차 시간에 쫓기며 산다. 그래서인지 해가 갈수록 스승의 날의 의미도 퇴색되어 가는 것 같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스승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우리의 전통이며 미덕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작은 나무가 자라 큰 나무가 되면 당연히 작은 그늘이 큰 그늘이 된다. 스승이 제자의 그늘이 되어 주었듯, 제자는 자라서 스승의 그늘이 될 것이다. <탈무드>의 명언에도 ‘나는 나의 스승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나의 친구로부터 배웠다. 더욱 그 이상의 것을 나의 제자로부터 배웠다.’라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믿음의 그늘, 참 좋겠다.



다시 산책길을 돌아 나무 터널로 들어섰다. 그늘이 주는 서늘한 바람이 발걸음조차 상쾌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 땅에 스승님들께 감사하며 더욱 신나게 걸었다.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 치면/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그 수고 무엇으로 덜어 드리랴/그 은혜 두고두고 어찌 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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