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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n 06. 2024

불필요한 것 버리기

오영호 / 시조시인



큰 방과 작은 방을 도배하기로 했다. 옷장과 책장을 옮기려니 그 속을 비워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아내는 이참에 아끼지 말고 과감히 버리라고 몇 번이나 다그친다. 석린성서(惜吝成屎), 아끼고 아끼면 똥이 된다는 속담도 떠오른다. 먼저 옷부터 정리했다. 유행에 벗어나거나 낡은 것을 중심으로 솎아냈지만 몇 개 버리지 못했다. 책은 더 문제다. 오래전에 두 번에 걸쳐 학교 도서관과 마을 도서관에 추려 보냈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책장은 빽빽이 들어찼고, 남은 책들은 곳곳에 쌓여 있다. 그중에 이름을 쓰고 보내온 책은 차마 버리기가 참 그렇다. 그래서 전집류나 사전류, 그리고 문학잡지를 주로 골라내었다. 책장에 공간이 생겼다. 그렇지만 10분의 1도 버리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다.



그동안 좋은 것은 뭣이든 가지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이제는 버리는 게 더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나타내는 가치 개념의 하나인 ‘미니멀리즘’이 생겨났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 안에 있는 불필요한 가구나 옷, 물품을 정리해서 삶을 단순화시켜 생각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을 미니멀리스트 또는 최소주의자라고 한다. 그들은 물질주의 역습에 맞서고, 스트레스 불만을 해소하고, 집중력과 생산성 향상에 진력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환경보호 활동과 우리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집중함으로써 내적 만족과 충만한 삶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는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잘 들여다보면 꼭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공자는 ‘인생은 본시 단순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자꾸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법정은 가장 애지중지 키우던 귀한 난을 지인에게 줌으로써, 소유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삶을 터득했다고 했다. 즉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추앙을 받는 성직자들의 삶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삶이 단순하면 세상도 단순해지고, 내려놓으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짐을 스스로 실천하며 평생 살아간다. 잘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니, 지혜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때어놨던 족자 勤儉門內 即有樂園(근검문내 즉유락원 : 근면·검소한 집안이 곧 낙원이다)를 다시 걸어놓았다. 잘 실천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왠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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