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진, 동화작가
개막식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이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푸른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애드벌룬에 실린 성화가 콩코르드 광장과 루브르 박물관 사이에 있는 정원에 떠오르자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서였을까? 비몽사몽 간에 들려온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는 나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난 평소 스포츠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축제엔 종종 동참해 그 매력에 빠져들곤 한다.
지난 7월 말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해도 좋을 만한 신선한 스포츠 제전(祭典)을 만나 정말 행복했었다. 바로 2024 파리 하계올림픽이었다.
개막식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없지는 않았다. 각 선수단은 센강 약 6km 구간을 보트를 타서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등 프랑스 명소를 지나 에펠탑 인근의 트로카데로 광장까지 이어지며 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48번째로 입장하는 우리의 국호(國號)를 북한으로 소개한 것이다. 안타까웠다. 중계진 대본에도 그렇게 돼 있었을까? 그리고 몇 번이나 연습했을 국가 이름 소개를 혼동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실수를 만회하기에 충분한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캐나다 팝스타 셀린 디옹의 등장이었다. ‘세계 3대 최고의 디바’임에도 불구하고 희소병을 앓고 있어 2년여 간 대중들에게 잊힌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등장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불운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연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파리가 어떤 도시인가?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이 찬가가 아니라도 떠오르는 단어가 사랑의 도시 예술의 도시가 아닌가? 셀린 디옹을 등장시켜 '사랑의 찬가'를 노래하게 한 것은 ‘에꼴드빠리’에서 영감을 얻은 기획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파리 하계올림픽은 스포츠 제전이라기보다 문화예술 올림픽이라 칭해도 좋을 만하다. 파리 혁명의 중심지 콩코르드 광장을 경기장으로 바꾸자는 발상은 또 어디서 나왔을까?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으며 새로 경기장을 건설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올림픽 도시가 이렇게 아름답고 신성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는 영국 매체 가디언의 극찬을 받을 만하다.
27년 전 센강 유람선에서의 추억은 이제 아련하기만 하다.
방문했던 장소들이 화면에 보일 때마다 그때 추억을 되살려 보려 하지만 격세지감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샹젤리제 거리와 몽마르뜨 언덕을 걷는 낭만을 만끽할 수는 없기에 파리가 보여준 하계올림픽은 나에게 더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처서(處暑)를 앞둔 오늘 밤 사랑의 찬가를 들으며 타임머신을 타고라도 에펠탑,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가고 싶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세상의 끝을 노래하는 절규의 목소리 에디트 피아프와 셀린 디옹도 만나고 싶지만 안타까울 뿐이다. 이 밤 병마로 세상의 끝에선 셀린 디옹이 다시 건강을 되찾아 샹송 디바로 거듭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