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필센에서 뮌헨으로 밤늦게 돌아오고 바로 다음날 아침, 또다시 중앙역으로 갔다—이젠 너무 익숙한 곳이 되어 버렸다. 프라하에 있을 때 JH가 뷔르츠부르크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었다. 여행 다음날 아무 일도 없으면 집에서 뒹굴거리고만 있을 것 같아 나를 더 바쁘게 만들었다. 어차피 가는 데에만 편도 3시간 넘게 걸려서 부족한 잠은 기차에서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궁금했던 SH와도 친해지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뮌헨에 오고 한 달 동안 JH에게 이따금씩 그의 이름을 들어서 내적 친밀감은 있었다. 이렇게 셋이서 8시에 중앙역에서 만나 기차에 탔다. SH는 성격이 매우 사교적이었고 다가가는 데에 있어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출신 대학의 분위기와 전공도 비슷해 대화가 잘 통했다.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환승 전까지 계속 수다를 떨다 두 번째 기차에서는 모두 곯아떨어졌다.
뷔르츠부르크에는 정오쯤 도착했다. 역에서 나오니 흐린 구름이 하늘을 잔뜩 메우고 있었다. 전날까지 보았던 체코의 창공과 자못 대조되었다. 그래도 뒤돌아 역을 바라보았는데, 역 뒤 언덕에 펼쳐진 노란 밭은 참 예뻤다. 구시가지로 가면 더 아름다울 게 분명했다. 시내로 들어가 바로 점심을 먹었다. 구글맵 평점이 좋은 케밥 식당에 갔다. 나는 7유로짜리 치킨 뒤륌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고 허기진 상태라 그랬나, 태어나서 먹어본 케밥 중 이스탄불에서 먹었던 아다나 케밥 다음으로 맛있었다.
배를 채운 뒤 도시를 가로지러 알테마인교에 갔다. 마인 강을 건너는 다리들 중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하는데, 그에 걸맞게 다리를 구성하는 돌들은 많이 그을려있었다. 다리 양편에는 석상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들 중 황금 칼을 들고 있는 몇몇 석상들이 인상 깊었다. 전부 칙칙한 어두운 회색으로 되어 있는 다리에서 유일하게 빛이 나는 물건이었다. 주기적으로 누가 닦는 것인지, 멀리서 보았을 때는 반짝일 만큼 깨끗해 보였다.
다리를 다 건넌 뒤,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 마리엔베르크 요새에 도착했다. 성벽은 칙칙한 회색 벽돌로 되어 있었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단아한 하얀 성이 있었다. 성 건물도 예뻤지만, 그 뒤쪽에 있던 정원이 더 예뻤다. 정원 자체가 크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색깔이 식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완전히 탈색된 듯한 하얀색 풀잎과 노란색·보라색 꽃들. 그리고 성을 등지면 보이는 도시의 전경. 빨간 지붕으로 뒤덮인 구시가지와 바로 앞에 있는 샛노란 밭이 조화를 이루었다. 날씨만 좋았다면, 프라하의 전경보다 더 예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요새를 다 둘러보고 다시 강을 건너 동쪽으로 돌아왔다. 도시 전경을 봤을 때부터 눈에 띄었던 붉은 교회에 먼저 가보았다. 붉은 벽돌과 하얀 외벽을 조합한 기독교 건물은 처음 보았다. Maria Chappel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했듯, 교회 정면에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 4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옆 Marktplatz에서 시장 구경을 하다가 뷔르츠부르크 성당과 궁전을 쓱 둘러보았다. 빛바랜 황금빛을 내는 궁전도 들어가서 관람하려 했으나, 10유로나 되는 돈을 주고 볼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 외관만 구경하다 역으로 돌아갔다.
예상보다 일찍 도시를 다 돌았다. 기차 출발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마트에서 Würzburger Pilsner을 한 병 사마시며 시내를 거닐었다. 어제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에서 마셨던 필스너에 비해 매우 밍밍했다. 홉을 일반 라거보다 많이 넣었다는 필스너를 마시면 왜 밍밍하다는 느낌만 드는지 항상 의문이다. 뮌헨에 돌아오니 19시밖에 안 되었다. DB가 이렇게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처음이었다. SH가 어제 짬뽕을 해놓았다고 해서 그의 집으로 가 저녁으로 먹었다. 재료의 부재 탓인지 육개장의 느낌이 더 강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금세 그릇을 다 비웠다. 그의 '짬개장'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