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건, 일상 속의 너일까?

레이먼드 카버, <보존>

by 이서준

나는 <보존>을 관계성을 바탕으로 하여 해석했는데, 크게 남편과 아내의 관계, 남편과 사회의 관계를 기반으로 작품해석에 힘을 실었다. <보존>은 실직당한 남편의 우울함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사탕 상자와 짐 빔 한 병을 꺼내 놓으며 실직소식을 샌디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늘 상 같은 대화만을 하고 있다. 평소와 다름없이 말이다. 남편은 소파에 하루 종일 누워 잡지를 보기도 하고 이상한 책들을 모아 읽기도 한다. 샌디는 최대한 이해해 보려는 태도를 지닌 것 같아 보였다. 샌디의 내면 속에서는 소파를 꼴도 보기 싫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서로의 끈을 놓지 못한 듯한 대화가 이어진다.


“오늘 어땠어?”, “괜찮았어.”, “당신은?”, “나도.”


이 대사를 보면 매우 형식적이지만, 늘 하던 것처럼 행동하는 두 명 사이에 뭔가 어색한 기운이 겉돈다. 이렇게 한 인격체의 삶이 한순간에 급격히 변화한다면, 서로는 조금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이 상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상황에 있어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어렵다. 위와 같은 늘 상 같은 대화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샌디는 최대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게끔 만드는 것으로 보이는데, 최대한 평상시처럼, 최대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성에서의 갈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가자면, 남편에 대해서 처음에 바라봤던 아내와 남편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편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다. 샌디는 직장동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샌디의 직장동료는 삼촌이야기를 꺼내며 위로한다. 마흔 살에 실직해 예순세 살이 될 때까지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장면에서 느낀 점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성이다. 영국의 문학잡지 <그란타>의 평가에 따르면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의 특징은 ‘정직한 허구’로 종합될 수 있다. 또한 ‘더러운 리얼리즘’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선정된다. 인간의 가치를 시험하되, 무엇이 인간을 충만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열린 마음과 정직함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대성당>의 12 작품 중 11 작품을 읽어본 후, 이 평가에 대해 크게 공감을 느꼈다. 내 생각에 따르면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은 현실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를 쓰지만, 사실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에 열광한다고 생각한다. 어렵고 궁핍한 현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 말이다. 타작품처럼 급격하고 드라마틱한 그런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이 외적으로 겪는 일과 내면의 충돌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위 삼촌 이야기도 같다고 생각한다. 샌디의 직장동료의 이야기를 투과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남편과 사회의 관계는 다시 아내와 남편의 관계로 되돌아간다. 사랑을 의심하게 되고, 자신이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한 것인지, 전과 같은 일상 속의 남편을 사랑한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샌디는 더러운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오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샌디의 눈앞에 소파와 하나가 된 듯한 남편의 정수리가 보인다. 그러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여는데, 냉장고가 고장 났다. 고장 난 냉장고를 두고 두 명은 냉장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편은 자꾸만 프레온 때문이라고만 하고, 샌디는 중고 냉장고를 사자고만 한다. 샌디는 본인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릴 적에 다니던 경매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샌디는 계속해서 남편에게 경매장을 가자고 하고, 계속 거절하던 남편도 하는 수 없이 간다고 한다. 식사는 준비한 그녀는 남편에게 앉으라 하지만 남편은 묵묵히 식탁 앞에 서있다. 남편이 있는 발아래로 정적 속에 물만 뚝뚝 떨어지고 있을 뿐 남편은 가만히 서있고, 샌디는 그저 그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그녀는 그가 주방을 떠나 거실로 가는 모습만을 바라본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장고의 고장을 서로 간의 위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냉장고의 고장은 고장 난 서로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냉장고의 고장은, 망가진 남편의 상황을, 샌디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소설은 둘 사이의 갈등과 상황을 터뜨리려고 노력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버는 이 부분에서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서로 간의 관계, 갈등과 상황을 ‘냉장고의 고장’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보여주는 것이다. 냉장고를 바꾸자고 하는 ‘샌디’, 자꾸 프레온 때문이라고 하는 ‘남편’, 이를 보고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나는 서로 간의 의견 대립이라고 생각한다. 샌디는 해결책을 모색하고,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을 ‘냉장고의 교체’로 표현하는 것 같고, 남편은 과거에 머물러 원인만을 탓하는, ‘냉장고 고장의 원인’으로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을 책망하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아마 그저 둘의 관계를 보존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편은 소파 안에서 지금의 상황을 보존하고 싶고, 아내는 둘 관계가 어긋나지 않도록 그 상황을 보존하는 것 말이다. 둘 다 같은 상황에 대해 다른 의미를 품고 있고, 서로 간의 관계가 ‘고장’ 난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는 일상 속의 남편을 사랑한 것인지, 실직한 상태의 무기력한 지금의 모습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전체에 나타나는 남편이 소파 안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소파는 남편이 자기 자신의 한계를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남편과 사회와의 관계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삼촌의 상황을 투과해서 바라보았던 남편의 상황은, 아내가 바라보았던 사회를 다시 남편의 시선으로 처리한 작은 관계 안의 남편과 삼촌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다. 일상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순간에 사회에게 버림받았다고 가정해 보자면, 사실 그 상황을 회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보통 남과 서로 자기소개를 할 때, 어떻게 하는지 모두 알 것이다. ~다니는, ~소속의, ~회사의, 누구 남편~, 누구 엄마 ~, 이렇게 ‘무언가’에 의해 소속된 사회적 존재로써의 인간인 겉치레를 자신의 내면인 것처럼 설명할 것이다. 또 사람들은 사회와의 관계에서 떼놓으래야 떼놓을 수 없는, 사회에서의 적응, 인정, 존경과 질투, 책망 등등 여러 감정과 관계 위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애쓸 것이다. 특히 사랑의 관계 속에서의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을 소개할 수 없다는 단순한 문제에서 시작하여 절망감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간단한 문제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두려워하는 남편은 그런 상황을 회피하고자 소파 안을 자신의 한계로 설정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남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무기력하고 사회 밖으로 나가기 꺼리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현대사회의 문제에 투과해서 남편 밖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남편과 사회의 관계, 남편과 삼촌의 관계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은 많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그중에, 대한민국은 실직문제와 취업난이 외환 위기 이해 가장 큰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취업난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상위권 중견기업의 사무직&생산직에 가기 위해 많은 구직자들이 처절하게 경쟁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고립·은둔한 채 살아가는 청년이 서울시에만 1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로 따져보면 4.5%였다. 전국 청년으로 대상을 넓히면 그 수는 6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고용 한파가 심해지면서 ‘은둔형 히키코모리’로 방안에만 머물고 두문불출하는 청년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태이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청년 6명 중 1명 이상이 일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작년 한 해 청년(15~29세) 취업자는 18만 3000명 감소했고, 실업률은 9.0%로 전체 연령 실업률 4.0%를 크게 웃돌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기업 공개채용 준비로 분주해야 할 지금 대기업 65%가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는 발표도 많다. 경제 침체에 갇힌 청년들은 일생 내내 상흔을 입을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른바 락다운세대(lockdown generation)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있다. 사회와 단절된, 사회에 나가기 무서워하는 심리를 가진 청년들과 실직한 사회인들은 모두 남편의 상황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아까 이야기했던 남편의 심리상태에 대해 증빙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 : https://kostat.go.kr/ansk/ 통계청]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내 생각은 사뭇 다르다. 이미 둘 사이에 투명한 벽이 쳐져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관계를 보존하고 싶은 샌디, 사회와 거리를 두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무섭고, 무력감에 현실을 회피하며 소파 안에서 상황을 보존하고 싶은 남편. 더러운 현실. 이 세 개의 요소는 나를 절망적인 결말 밖에 생각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흔히 결정론자들이 말하는 ‘닫힌 결말’이라는 것이다. 삶과 사람, 사람과 사랑 사이에서 만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충돌들이 눈에 보이는 갈등과 충돌보다 이해하기 어렵고, 여러 번 봐야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지만, 나에게 더 큰 감정을 이끌어내게끔 했다. 이것이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이고, 여러 관계성을 바탕으로 이 책을 읽어낸 가장 큰 이유이다.

처음 읽을 때는, 발에 떨어지는 물이 무슨 의미 일까 하며 읽었으며, 두 번째는 왜 삼촌 이야기를 꺼냈으며, 왜 드라마틱하게 둘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며 읽었고, 세 번째는 ‘레이먼드 카버’라는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는 건지 궁금해하며 다른 작품들을 읽고 ‘보존’을 읽었고, 네 번째에 이르러서야 이 관계성에 의거하여 읽어냈고, 드디어 마지막이 되어서 이 책의 결말을 짐작해 낼 수 있었고, 내 해석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보존’은 12 작품 중 소신껏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작품에 비해 ‘내용’을 읽어내는 방법이 너무 다양하다. ‘남편과 샐리의 관계’ , ‘남편과 사회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의 글을 읽어내는 방법이 각기 다를 것이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고, 다른 사람의 해석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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