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사이 에피소드 13. 잔소리는 누구나 듣기 싫다.
딸아이는 어릴 적부터 나의 권유로 여러 가지 미술공모전에 도전했었다. 좋은 결과를 내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또래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었지만 아이디어 면에서는 특출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미술학원을 오래 다니진 못했다. 아이가 남의 쓴소리를 듣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굳이 싫다면 하지 말라는 양육방식으로 일관했기에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그만두게 했다.
최근 중학교에 가서 보건선생님이 '전자/담배의 문제점을 담은 포스터 공모전'을 제안했나 보다. 딸은 공모전 참여에 부담을 갖지 않는 편이라 손을 들고 응모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는 공모전 프린터를 들고 왔지만 몇 주 내내 작업을 하지 않았다. 나때만 해도 미술 공모전은 직접 가서 그리는 대회가 대부분이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대부분 그림을 스캔해서 보내거나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심지어 패드 이미지로 그리는 분야도 상당히 많이 생겨났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접수마감 직전 주말, 나는 아들과 일정이 있어서 나가고 딸아이는 공모전에 낼 그림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충분히 혼자 작업할 시간이 필요하니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과 함께 그 일은 내 기억에서 잠시 지워졌다. 그리고 어제, 딸은 공모전 작업을 보건선생님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다. 솔직히 귀찮아서 네가 보내라고 했지만 딸도 귀찮았는지 나에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우선 최종 작업물을 보게 되었는데, 뭔가 아쉬웠다. 우선 '주제'가 담배인지 마약인지 게임인지 알 수 없었고, '적의'만 담긴 '유혹'의 대상만 보였다. 그래서 딸에게 한마디 했다. "주제가 담배라면 담배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더 명확해질 것 같은데?"
내가 엄마여서 그랬을까. 그냥 작업에 대한 견해와 의견이 듣고 싶지 않았을까. 아마도 둘 다였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딸은 불같이 화를 냈다. "아! 보지 마!!! 보지 말라고!!" 보내달라고 보여줬으면서 보지 말라니! 어쩌란 말인가. 딸은 내 눈을 가리고 그림을 지워버리고는 자신이 보내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오지랖일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까워서 한 소리에 저렇게나 난리를 치나 어처구니가 없고, 서운하기도 했다. 좀 돕겠다고 한 소리였는데 저럴 일인가?
문제는 내가 이후에도 생각할수록 괘씸해서 몇 번 그 일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오늘 저녁에도 몇 가지 생활습관에 있어서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야 할 숙제를 마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순서와 시간 배분에 대해서 얘기 중이었는데, 딸은 긍정적으로 수긍했다. 그리고 이어서 영어공부에 대해서 불안하지 않은지 (현재는 수학학원 하나만 다니고 있는데, 스스로 영어가 자신 없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으므로) 그렇다면 학원을 다니는 건 어떤지 얘기하다가 이렇게 말이 나왔다. "부족한 부분은 이제 엄마가 도울 수가 없어. 엄마가 아무리 얘기해도 너 내 얘긴 안 듣잖아. 저번에 공모전만 해도 '담배'글자만 썼어도 훨씬 내용 전달이 됐을 것 같은데.." 딸은 먹던 밥그릇을 내팽개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내가 또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렸나 보다.
딸은 그 길로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불같이 화를 내며 조언 몇 마디 한 게 밥도 안 먹고 이럴 일이냐며 응수했지만 딸에게 돌아온 말은 이랬다. "나도 안다고! 나도 아는데 자꾸 왜 말하냐고! 왜 속상하게 건드냐고!" 자신의 재능이 어떤지는 사실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안다. 나도 사실 몇 년간 도전했던 공모전에서는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5년 전쯤엔 내기만 하면 당선이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하나 당선될까 말 까다. 그만큼 젊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좋은 작업물을 내는 거겠지. 나의 재능을 누군가 평가할 때 가장 기분 나쁘고 속상하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똑같은 경험을 해봤으니까. 그런데 역지사지의 자세는 잃고, 딸에게 왜 그렇게 쏘아붙였을까. 아마도 아니까 보였을 것이고, 보이니까 안타까워서 한 말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분까지 헤아려주지 못한 건 나의 잘못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