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사이 에피소드 12. 우리는 함께 성장 중이다.
어느덧 딸이 중학교에 입학한 지 4개월. 1학기는 자유학기제라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없지만 수행평가를 통해 아이들의 현 학습 상황을 체크한다. 학기 초에는 어리바리 선생님에게 매일 혼나더니 요즘은 더러 선생님들한테 칭찬을 받는다는 소리를 들으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사실 4개월 동안 매일 아이와 대화했지만 요즘 정말 부쩍 성장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오늘의 주제는 50대 후반인 담임 선생님의 잔소리 수준이 폭언으로까지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학급 아이들이 단체로 까먹은 도덕 숙제가 사건의 발단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은 가사기술 교과 담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15명에게 A4 한 장의 반성문을 쓰게 하고, 심지어 남겨서 한 명 한 명과 상담을 했다는 것이다. 그 상담의 대화는 도덕숙제로 시작해 결국 평소 그 아이의 행실을 꼬집는 것을 끝났고, 아이들 말에 따르면 인신공격처럼 느껴져서 상담 후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은 눈물을 쏟았다는 것이다.
상황을 들으니 담임선생님 개인에게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갱년기가 심화됐거나 약간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을 편애하고 굳이 안 해도 될 잔소리를 한다고 느껴지긴 했다. 내가 25년 전 학교 다닐 때 자주 봤던 유형의 선생님이란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교편의 지위가 많이 흔들리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측면이 안타깝고 그래도 선생님은 존중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이지만 학창 시절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도 많이 보았기에 이번만큼은 선생님 편을 들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딸아이 앞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하기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런데 그런 얘길 하면서 딸의 발언이 한층 어른스러워서 놀랐다.
"아니, 우리 반 아이들 많이 나아졌단 말이야. 내가 반장 하면서 느낀 건데 아이들이 학기 초보다 나쁜 말도 안 쓰고, 서로 배려해 주려고 노력하고, 정말 많이 나아지고 있는 데 선생님은 그런 모습은 봐주지도 않고, 늘 자기 기준에서만 '왜 내 말을 안 듣냐, 나는 너희들이 싫다. 요즘 1학년 정말 최악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맨날 우리를 욕한단 말이야. 우리 더러는 바뀌라면서 선생님은 왜 좀 친절하게 바뀌려고 하지 않는 건데? 우리 반 애들도 정말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얘길 하면서 눈물을 그렁그렁 하는 딸을 보니 나까지 눈물이 날 뻔했다.
사실 중학교에 가면서 딸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다. 학원과는 담쌓았던 아이였는데 스스로 학원에 가겠다고 하질 않나. 점수가 떨어진 걸 걱정하질 않나. 좀 더 잘하고 싶어서 단기 과외를 시켜달라고 하질 않나. 학교 선생님한테서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잘할 거라는 격려를 듣지 않나.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나. 초등학교 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요즘 보고 있어서 되려 내가 놀라고 있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 그저 기다리고 지켜봐 주고 가끔씩 잘할 때 칭찬해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힘이 되고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모르시는 걸까? 오랜 시간 교편에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일이 그저 일이 되면 그런 마음가짐을 까먹게 되는 걸까? (사실 아이들 말만 들어서는 현실이 어떤 지 다 판단하긴 어렵기에 선생님을 향한 의견이 조심스럽긴 하다.)
최근 나는 재취업을 했다. 내가 원래 일했던 광고대행사 분야의 작은 회사에 들어간 기회를 얻었다. 육아로 개인으로 경제활동을 하려고 했던 7년 만에 다시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나에게 큰 변곡점이 되었다. 엄마는 계속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아이들의 말처럼 나도 이렇게 회사를 다시 나가게 되고 적응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선 하다 보면 적응하기 마련인가 보다. 나이 마흔에 나도 레벨 업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아이들에게만 레벨 업하라고 할게 아니라 나 스스로 레벨 업을 위해 감각을 키우고 학습해야 할 시기다.
백세 시대에 레벨업은 전 연령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