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지하지 못한 우주의 패러다임들 05.
허무는 예고 없이 조수(潮水)처럼 밀려온다.
아무리 의미를 세워도,
허무가 휩쓸고 지나가면
그 아래의 텅 빈 바닥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바닥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진짜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마음 안에 심연 하나를 품고 산다.
그 심연에 매달리는 추가 하나 둘 쌓여, 무게를 못 견디고 저 바닥까지 내려앉으면 온몸에 우울이 넘친다.
그럴 때는 어떤 의미도, 이유도 더는 살아갈 근거를 갖지 못한다.
입고 먹고 자는 일이 다 채워져도 낙을 찾지 못하면 허기가 졌다. 낙을 찾으려면 사랑하는 것들을 키워야 한다.
사랑하는 것들이 생겼다. 내가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구멍, 숨 쉴 이유를 상기시켜 주는 매개들.
분명 사랑만 키웠는데, 불안이 같이 자라났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유한해서 그랬다. 유한한 것들에 마음을 다 쏟으면, 끝이 다가왔을 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플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차라리 무료하게 살다가 견딜만하게 이별하는 게 나을까.
인간으로 태어나서 때때로 괴로워야만 했다.
이건 비단 한 인간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랑에는 불안이 따라오는 것처럼, 세계는 애초부터 모순으로 짜인 곳일지도 모른다.
태어남은 죽음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딛게 한다.
평등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고, 자유에는 늘 자유를 억압하는 책임이 따랐다. 어딘가에 소속되길 바라는 마음에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갈망이 공존한다.
세상의 고리를 돌기만 하다, 순환의 끝은 어디일까 묻는다.
그런데 그 답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데, 명확하게 언제를 끝이라고 할까?
죽음이 진정한 끝이라면, 깜깜한 잠은 언제까지 지속되며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라면, 언제까지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는 걸까?
나는 끝내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끝이라는 거, 정말 있기는 한 걸까?
내가 괴로운 이유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유한한 내가, 무한을 생각하고 있는 모순 때문이다.
무한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언어가 무력해지는 곳, 수학이 증명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지점, 양자와 중력이 서로를 부정하는 물리의 끝, 철학이 신을 두어야만 했던 영역.
무한은 인간에게 닿을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그렇기에 무한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야 한다.
존재하는 것은 경계를 가지므로, 내가 떠올린 그것은 더 이상 무한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무한을 모르는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끝없이 증식하는 수열을 상상하고, 자연수와 홀수의 개수가 무한히 같아지는 지점을 모두가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우주를 둘러싼 수많은 비밀이 있다면, 왜 무한은 그 안에 남아있지 않고 인간에게 닿아 공허를 남길까.
한동안 나는 바깥의 무한을 생각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의 끝, 압도적인 외부.
손에 넣을 수도, 이길 수도 없는 거대한 타자.
우주, 신, 시간 같은 것들.
하지만 그 끝을 바라볼수록, 내 안에서 완성되는 또 다른 무한이 있었다.
나, 사랑, 그리고 불안이었다.
입체를 바라보는 거울들?
누구에게나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이 있다.
질투, 두려움, 미움처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깊은 홈이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다.
그 어둠을 감추고 밝은 면을 내보여도 인간은 결국 명암이 공존하는 다층적인 입체다. 그래서 한 면만으로는 결코 그 사람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
아마 그것은 모두가 마음속에 무한한 내면을 품고 있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각자의 수많은 내면을 드러내지 않은 채, 타인과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난해하고 어렵다.
나 스스로조차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
내가 나를 인식하면 ‘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대상이 되면 그 대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생기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또 다른 의식을 만들어낸다.
끝없이 되비치는 거울 속에서 계속 증식하는 나를 끝내 잡을 수 없다.
유한한 언어와 논리로 자신을 붙잡으려 할 때마다, 내 안의 무한한 나를 마주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인지, 자기 자신에게 지시를 내리는 언어는 무한역설에 빠진다.
마을의 이발사가 있다.
그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만 면도해 준다.
그는 자신을 면도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면도하지 않으면, 그는 스스로 면도해야 한다.
면도하면, 그는 자신의 규칙을 부정하게 된다.
나를 인식하는 행위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대로 살지 못하기도 하듯이, 인간은 자신에게 완전한 일관성을 기대할 수 없는 존재다.
유한을 위해
실수로 나와버린 단어
사랑은 그 사람의 한계를 보면서도, 그 안의 끝없는 세계를 느끼는 일, 이건 그 무엇보다 무한한 감정이다.
사랑하는 이를 깊이 바라볼수록, 그 사람 안에서 나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나를 비추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토록 입체적인 타인에게 무한한 자아를 투영하고, 거리낌 없이 애정을 나누는 건—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다.
가장 약한 존재인 유한한 인간이 가장 강력한 무한을 향해 손을 뻗는 과감한 일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불안은 무한이 그 손을 갑자기 잡아당길 때 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타자들 사이에서, 끝없이 열린 선택지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 때.
이 불확실성은 유한한 나를 순식간에 잠식한다. 잘 살고 싶은 만큼,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무한은 생각이 감쌀 수 없는 깊이이자, 감당 불가능한 압력이다. 그 압력 때문에 무한은 스스로를 쪼개어 사랑이나 의미라는 파편으로 인간에게 닿는다.
인간은 시로, 그림과 글로 무한을 번역하며 저마다의 힘으로 유한한 삶을 쌓아 올린다. 유한해서 질문하고, 갈망하고, 실수하며 사랑한다.
무한은 의미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하는 여백이다. 그렇기에 무한을 궁금해하는 것은, 내 안의 근원을 묻는 일이다.
무한을 먹고 자란 내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어 두렵다.
유한한 내가 심연에 오래 잠기지 않으려면, 무한이 남긴 두려움을 씹어서, 끊어내 삼켜야만 한다.
질문 부스러기 # 14
모순으로 짜인 세계에서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단 하나의 유한한 의미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