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후 이듬해, 딸아이가 태어났다. 1976년 이였다.
항렬에 따라 ‘은숙’이라 지었다.
장손의 장녀로 태어난 아이는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남편을 닮아 뽀얀 피부에 팔다리가 길쭉했고,
순이를 꼭 빼닮은 예쁜 눈코입이 오목조목 자리 잡고 있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은 밝은 갈색을 띠어,
순이가 보기에, 영락 없이 천사였다.
‘이런 아이가 내게 태어나다니.’
시집은 마당을 끼고 기억자로 꺽인 여덟 칸짜리 큰 한옥이였다.
그러나 안채는 시어머니가 통째로 차지했고,
나머지 방들은 작은 시누네와 도련님들에게 나누어졌다.
정작 장남 부부에게는 맨 끝 칸, 사랑방 하나가 주어졌다.
하지만, 아이와 단둘이 있는
그 좁은 사랑방은 우주만큼 넓고, 동시에 아늑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하곤 했다.
친구나 경찰에 업혀 돌아오는 날도 있었고,
덜 취한 날엔 문을 발로 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마다 순이는 깜짝깜짝 놀라
아기를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는 화가 나면 끝장을 봐야 멈추는 성미였다.
차라리 남편이 기술 배운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마음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