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은숙

by 맑음


결혼후 이듬해, 딸아이가 태어났다. 1976년 이였다.

항렬에 따라 ‘은숙’이라 지었다.

장손의 장녀로 태어난 아이는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남편을 닮아 뽀얀 피부에 팔다리가 길쭉했고,

순이를 꼭 빼닮은 예쁜 눈코입이 오목조목 자리 잡고 있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은 밝은 갈색을 띠어,

순이가 보기에, 영락 없이 천사였다.


‘이런 아이가 내게 태어나다니.’


시집은 마당을 끼고 기억자로 꺽인 여덟 칸짜리 큰 한옥이였다.

그러나 안채는 시어머니가 통째로 차지했고,

나머지 방들은 작은 시누네와 도련님들에게 나누어졌다.

정작 장남 부부에게는 맨 끝 칸, 사랑방 하나가 주어졌다.


하지만, 아이와 단둘이 있는

그 좁은 사랑방은 우주만큼 넓고, 동시에 아늑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하곤 했다.


친구나 경찰에 업혀 돌아오는 날도 있었고,

덜 취한 날엔 문을 발로 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마다 순이는 깜짝깜짝 놀라

아기를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는 화가 나면 끝장을 봐야 멈추는 성미였다.


차라리 남편이 기술 배운다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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