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열어보니 엄마가 언제 줬는지도 모른 김치가 보였다. 죽기 직전의 김치를 꺼내 물에 다급하게 씻었다.
보통 묵은지참치 김밥으로 죽은 김치 소생시키지만 이번엔최화정 묵은지 볶음을 하고 싶었다.
결혼 2년차 됐다고 이젠 간단한 요리는 레시피를 한 번 읽고도 금방 따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다진마늘과 들기름 넣고 볶은 후 맛을 보니 약간 맛이 간 것 같은데 냉장고에 두고 목요일 카레 먹을 때 김치 대신 먹어봐야지.
오빠가 먹었을 때 얼굴을 찌푸리면 그때 버리면 된다.
근사하게 차린 저녁보다 벌써 냉털 요리를 했을 때 음식이 맛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우리 엄마는 주부 다 됐다며 웃겨 죽을라 한다. 가끔가다 사진을 보내는 것도 오빠랑 나 이렇게 절약하며 잘 살고 있어.라고 보여주고 싶어서니까. 그러고 보니 벌써 2주년?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아직 아기가 없어서 그런 걸까. 둘이서 살다 보니 일과 집의 반복. 둘 다 주 6일이다 보니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녀와 어디 찍고 오기라도 하면 저녁 먹고 그새 오늘 하루 아쉽다며 침대에 누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월요일을 기다린다.
돈을 잘 모으려면 아낄 수 있는 식비부터 아끼자!
오빠는 회사에서 저녁에 밥을 먹고 올 수 있기에 내가 유일하게 요리하는 건 주말이 되었다. 1년 전만 해도 그래도 집밥을 먹어야 힘이 나지! 하며 큰소리쳐놓고선 몇 달 지나곤
'오빠. 평일 3일은 같이 먹자, 오빠 이틀은 먹자, 오빠 하루만 같이 먹자.'
'그냥 먹고 갈게.'
둘이서 오붓하게 먹는 시간은 주말이 되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마치 그날을 기다린 것처럼 뭘 맛있게 먹을까~ 하며 미리 장 볼 거를 적어두곤 한다.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야 하니까. 토요일 저녁은 푸짐하게! 경조사비나 생각지 못한 돈들이 많이 나갔을 경우에는 냉장고와 냉동실을 열어 최대한 냉털요리로!
둘이서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일들이 참 행복하다. 영화나 드라마 코드가 서로 잘 맞아서 이것도 가능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서로 맞춰진 걸까?
오빠를 만나기 전에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는 시간으로 저녁을 보냈다. 본래의 나의 직업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참 매력적이고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창조한 세계를 입증받길 원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간절했던 열정도 현실을 깨닫고 나니 꿈은 내 뜻대로 그렇게 빨리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많이 내려놓은 상태가 되었다. 원래의 나라면 불행하며 스스로를 자책했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빠는 저녁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과 건담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데 만든 건담을 보여주며 어린아이처럼 굉장히 뿌듯해한다. 처음에 오빠의 그런 취미를 존중하지 못하고 내가 자기 계발이라던가 성장, 꿈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아서 오빠한테 강요하는 바람에 부딪힌 적이 더러 있었다. 몇 번 부딪히고 나서 오빠는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일상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빠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래, 취미란 이런 거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상대방의 성향이 내 것으로 스며들었다.
초반에 신혼일기와 걸맞지 않은 묵은지 볶음 사진을 올린 것도 웃음이 난다. 노트북을 두들기는 와중에 코를 비볐더니 손 끝에 묵은지 냄새가 쿰쿰하게 나고 있다. 그래도 저 사진은 왠지 모르게 지우고 싶지 않다.
그래, 나 오늘 냉장고에서 죽어가던 김치 살렸잖아. 다들 냉장고 털이 많이 하는 거니까 연관되지 않겠어?"
앞으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쓰며 소소하게 신혼일기를 남겨놓을 생각이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독자들도 같은 마음이길! 아주 조금씩 자신들만의 에피소드가 있듯이 공감되거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남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