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쉬는 순간 Aug 13. 2024

신혼일기 13- 남편이 아닌 아들내미를 키우고 있다.

함께 읽고 쓰는 감사 일기를 시작했다.

"우리 함께 하는 걸 늘려가보자. 감사일기 써보는 거 어때? 딱 세 가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위해 글과 가까워지려면 감사일기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게임을 잠시 멈추고 불러선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오빠는 내가 준 공책에 몇 글자 적고 끝이 났는지 여전히 쓰고 있는 보고 물었다.


"그렇게 감사한 일이 많아?!"

"아니, 감사해도 왜 감사한지 구체적으로 적어야지."


나의 감사 일기.

1) 오빠와 대장 내시경을 같이 했습니다. 둘 다 용종 없이 깨끗해서 다행입니다. 함께 약을 먹으며 즐겁게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오빠와 함께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여태 끓인 김치찌개 중 최고의 김치찌개였어요. 둘이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오빠와 감사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 하리라의 말 뜻처럼 저희가 감사함을 적으며 더 감사한 일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오빠의 감사 일기

1) 대장내시경 아무 탈 없이 지나가서 감사합니다.

2) 오늘 00과 맛있는 저녁 요리해서 먹은 거 감사합니다.

3) 오늘 00가 아무 말 안 하고 게임하는 거 같이 구경해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뭔데"

내 질문에 오빠가 혼자 히죽거렸다.

"내일도 하자! 운동 끝나고!"

요즘은 오빠가 건담 만들기보다는 엑스박스에 주로 꽂혔다. 에어컨이 거실과 침대방에만 있어서 방에 들어가 건담을 만들기에는 너무 더운 날씨였다. 나 역시 내 방은 더워서 거실에서 주로 독서하거나 글쓰기를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소파에 앉아 엑스박스 하는 게임에 눈이 가곤 하는데 요새 오빠는 레드풀이라는 뱀파이어 세계관을 가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웹소설로 써볼까 하는 뱀파이어 아이디어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유심히 곁에서 지켜봤더니 오늘 쓰자고 했던 감사 일기 속에 들어가 있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늘은 00가 뭐라 안 하고 게임하게 해 줬어."

"내가 엄마야?!"


맞다. 요즘 그렇긴 하다. 요새 들어 내 행동은 아들 하나 둔 엄마처럼 행동하고 있다. 어젯밤은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오빠한테 하성란 작가님의 단편소설을 읽어주었다. 마치 어린 학생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듯 목소리도 다르게 해서 읽는데 제법 재미있는지 오빠는 게임을 멈추곤 '그래서 어떻게 됐데? 그래서? 궁금한데' 물었다.  

"이어서 오빠가 읽어!"

이러고 싶지만 책을 가까이 두지 않은 사람에게 갑자기 강요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책을 읽은 것도 대학생 때부터였으니까. 인자한 미소로 '잠깐만'하며 궁금한 부분을 집어 읽어주다가 갑자기 입이 바짝 말랐다.

"목말라. 그만 읽을래"

"알겠어."

하면서 혼자 조용히 읽던 중 옆에서 묻는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됐데?"


오빠한테 내가 독서를 읽어주는 것도 누군가 보면 다 큰 어른한테 독서를 읽어준다고? 싶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성향이 그런 것 같다. 내가 좋아하거나 좋은 영향을 받은 게 있으면 함께 하는 사람도 그 기운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계속해서 푸시를 하게 되는 거. 한 동안 오빠와 독서 논쟁으로 다툰 적도 있었다.

사실 나 조차도 웬만한 독서가들에게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약하지만, 그래서 평상시에는 읽으려고 하는 그런 노력이 있고, 배우자가 함께 해줬으면 하는 내 욕심도 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 오빠를 위해 작은 꼬마 김밥을 싸서 출근을 보냈다. 나 혼자만의 여름휴가. 휴가여도 푹 자지 않았다. 아침은 먹여서 보내야지. 날도 더운데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데! 요 근래 무리한 건 없는데 아침에 일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6시와 7시만 되면 알람 한 번에 벌떡 일어나 준비하던 내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한동안 아침을 못 먹고 출근하는 오빠를 보며 괜히 미안한 마음도 생기곤 했다.

"김밥 챙겨! 출근 잘하고"

"저녁에 보자!"


오빠가 나간 직후 나 혼자 있는 건 참 오랜만이다. 약속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니, 독서도 하고, 글도 써야지.

설레서 기대 가득한데 정작 몸은 소파 위를 차지했다. 글 쓰기 전 몸을 움직여야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다.

'휴가 첫날인데'

이대론 있을 수 없어서 일어나 장 보러 나갔다. 마침 김밥김도 떨어졌다. 노브랜드로 들어가 김밥과 올리브유를 샀다. 지나가다 보이는 다이소에 걸음을 멈추었다.

"다이소에서 살 거 있었는데."

다이소만 보면 살 게 있었는데 하고 들어가 막상 들어가면 까먹고 눈에 띄는 게 살 게 있었던 품목이라 집어든다. 옆 사람도 똑같은 마음인 건지 코너마다 걸음을 멈춰서 손가락으로 턱을 두들기며 흠- 소리를 내고 있다.

'생각하는 건 다 똑같구나.'

집으로 돌아와 챙겨간 장바구니를 꺼내 하나 둘 정리했다. 다이소에서 주방 냄비 정리대를 샀다. 잘 산템이다.

안 그래도 여름휴가 때 오빠와 대청소를 하기로 했었는데 이 참에 주방을 정리하고 싶었다. 선반 밑을 열어보면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그릇들과 냄비들을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데 막상 꺼내서 정리하고 보니 정리대 때문에 냄비가 들어가지 않는다.

'제길'


서랍에 정리대를 넣어두고 책상에 앉았다.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한 동안 글쓰기에 빠졌을 때, 내 집중도가 좋은 시간을 찾으려 했다. 새벽과 오전, 오후, 저녁. 그중 가장 집중도가 좋았던 시간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보다 혼자 오롯이 있는 시간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순식간에 깊이 들어가는 편이다. 안의 나와 만나 면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시간이 오고 간다.

'왜 넌 이 이야기가 끌렸어? 왜, 그들을 만들어냈어? 왜? 걔들이 널 괴롭히디?'

이런 식으로 질문하다 보면 하나둘씩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해서 받아 적고 있다. 그런 허구의 상상은 숨 쉬게 만든다. 가끔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오빠와 공유하면 인풋과 아웃풋을 주는 오빠는 더 상상력이 뛰어나기에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해 나에게 오히려 질문하곤 한다.

"오, 그거 좋은데?"

하고 내가 모르는 분야면 관련된 독서를 집어든다. 독서는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선 작가의 필수라고 느꼈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건 참 어렵다. 글이 막혀도 꾸준히 독서를 하신 분들은 단어의 선택과 문장력과 문체가 뛰어나다는 월등하게 느낄 있다. 작법서라던가 소설책도 꾸준히 읽어야 나만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다.


유퀴즈에서 서울대 문해력 교수님이 나와서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모니카 페트'가 쓴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단어를 모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단어를 주머니에 넣어야 내 단어가 되고, 모으면 모을수록 나는 말의 부자가 된다. 


오빠와 감사 일기를 시작한 것도 이러한 바람에서다. 나 역시 독서를 꾸준히 해야하고, 함께하는 상대가 오빠로서 서로 책을 통해 얻은 생각과 글을 공유하는 것. 우리가 그동안 썼던 감사일기는 가끔 전으로 돌아가 훑어보면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조금 더 존중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서로가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오빠와 신혼부부로서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아닌, 가정 안에서도 각자 존중받아야 할 사람으로서 함께 삶을 걸어가고 싶다.



.











이전 12화 신혼일기 12- 우리의 이번 여름휴가는 화장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