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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 순간 Aug 02. 2024

신혼일기 3- 내 꿈을 응원해 주는 고마운 사람

포기를 모르는 나의 끈질긴 노력

남편과는 자연스레 들어온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매일 같이 병문안을 갔다가 그 친구의 남자친구분께 소개를 받게 되었다. 오랫동안 연애의 공백기간이 있었고 그때 나는 글 쓰는 일에 매력을 느껴 누군가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둘 중 골라봐요."

"이 사람이요."

"얘 말고 얘."

"네?"

"이 친구가  훨씬 착한데. 담배도 안 펴요. 술도 잘 안 하고"


친구 등살에 떠밀려 처음 만났을 땐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어딘가 모르게 덤벙되는 모습이 재미있어 2차까지 이어진 만남으로 넘어가 다음 날 약속 있다는 내 말에 그 장소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던 사람.


"왜요?"

"그냥 기다려줄게요. 집에 데려다 줄게요"


기어이 내가 다녔던 독서 모임 사람들과 연극 약속으로 세종문화회관까지 데려다주고 밖에서 기다렸다. 

1부와 2부로 나눠진 연극을 그저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에 연극을 보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다행이었던 건 연극이 현대 예술처럼 다르게 편성돼서 모임 사람들도 마음에 안 들었던 눈치였다. 이참에 이야기해야지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 후 오빠가 있던 곳으로 가니 오빠는 내가 연극을 보는 동안 출간 한 내 책을 사들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했는데 그때 당시  책이 무슨 이유로 부끄러워지는지. 책이었고 아직 떳떳하지 못한 작가라 그런가? 


"오빠는 꿈이 뭐야?"

"너랑 행복하게 사는 거"


결혼 준비할 때는 이 말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서 느껴지는 건 

'나처럼 꿈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각자의 소명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진짜 이 길을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찾아오는데

이쯤이면 포기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봐야 된다 느껴지는데 왜 이렇게 나는 이 행위를 붙잡고 있는 건지. 

몇 년 전 소설을 출간하고 나서 그 성취감이 나의 존재를 일깨워준다고 생각하고 나니, 좀처럼 포기할 수 없는 끈기가 생겼다. 글을 쓰면 잘 될 거라 생각했던 거만함도 이젠 그렇지 못할 뿐.

 

"오빠 만약에 내가 지금처럼 여전히 그대로면 어쩌지? 잘 안되면 어쩌지?"


퇴근하고 혼자 방에 들어가 글을 쓰다 문득 궁금한 마음에 오빠한테 쪼르르 달려가 질문했다.

 

"안되면 안 되는 거지. 뭐가 걱정이야?"

"그렇긴 하지."


괜한 질문을 했다 생각하며 몸을 움츠리고 돌아선다. 날 옥죄여오는 불안이 뭔가 어떤 대답을 듣길 원하는 걸 지도 모른다는 느낌. 최근에 동화공모전이 있어서 글을 쓰고 오빠한테 피드백을 받을 때에도 좀처럼 풀리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갈수록 글을 적는 게 어렵고 복잡하다는 글 권태기가 오고 있던 중이었다. 

오빠랑 영화나 드라마 코드가 잘 맞아서 보면서 인풋을 하고 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글로 써지질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여전히 내 길이 아닌가. 아직도 그 길을 정확히 들어서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는 것도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생계유지 본업이 따로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든다. 


"오전만 일하고 싶어. 그냥 글 쓰고 싶어서."

"00가 하고 싶은데로 해. 힘들면 그만두고 글 쓰면 되지."

나의 지칠 줄 모르는 글의 집착에도 흔쾌히 의견을 받아들여주는 사람. 나는 참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 안정적인 걸 못 견뎌서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큰 불평 없이 직장을 다니며 꿈이 없어도 묵묵히 일을 하는 오빠를 보면 나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도전해 볼게. 오빠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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