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의 미학

스토아와 미니멀리즘의 교차점

by 엉클디

물결처럼 밀려오는 알림. 끝없이 늘어나는 소유물. 하루가 끝날 때마다 채워지는 쇼핑 카트.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나는 며칠 전, 옷장을 정리하며 불현듯 깨달았다. 입지 않는 옷들로 가득한 옷장 앞에서, 왜 나는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가? 옷장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쇼핑을 계획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어떤 근본적인 모순이 느껴졌다. 그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떠올랐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만, 결국 소유된 삶.”

이런 모순된 감각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보편적 징후일지도 모른다. 풍요 속의 갈증. 소유 속의 공허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비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스토아적 절제의 현대적 울림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아마 현대인의 소비 방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까. 스토아 철학자들이 강조했던 것은 명확했다. 외부의 사물이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 그들에게 절제란 단순히 ‘적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태도였다.

“네 힘이 미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 에픽테토스의 이 가르침은 오늘날 끊임없이 유행을 좇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요즘 내가 자주 방문하는 카페의 벽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있다. “당신이 갖지 못한 것에 집착하면, 갖고 있는 것마저 즐기지 못한다.” 이 문장이 마치 고대 스토아 철학자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2천 년이 지났어도, 인간의 근본적인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만난 한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낡은 가방 하나와 오래된 코트를 입은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값비싼 외투를 입고도 끊임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엇이 진정한 평온을 가져다주는지, 그 순간 명확히 보였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덜어내는’ 태도를 권했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절제를 넘어, 마음의 평정을 위협하는 감정과 생각까지 포괄한다. 그들이 말한 ’아파테이아(apatheia)’는 무감각이 아닌, 불필요한 감정의 동요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평온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진정한 평온은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썼다. 오늘날 우리가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추구하고,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며, 물건을 버리는 영상에 열광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와 같은 내면의 평정을 갈망하기 때문은 아닐까.


미니멀리즘, 그 너머의 철학


“Less is more.”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이 유명한 문장은 단순히 건축의 원리를 넘어, 하나의 생활 철학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선다. 그것은 과잉의 시대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본질을 향한 회귀다.

몇 년 전, 나는 일본의 작은 료칸에 머문 적이 있다. 다다미 방에는 낮은 테이블 하나와 차 도구,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뿐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심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가 지나자 그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충만하게 느껴졌다. 불필요한 것들이 없는 공간은 내 마음도 정리해주는 듯했다.

현대의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적게 소유하자”는 것을 넘어,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인 요즘, 우리는 무한한 정보와 선택지 속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한 초기 아이팟을 생각해보자. 복잡한 버튼들을 제거하고 단 하나의 다이얼로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게 한 디자인은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라는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미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철학적 결정이었다.

요즘 내가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들도 점점 더 미니멀해지고 있다. 불필요한 배너와 팝업이 사라지고, 사용자가 정말 필요로 하는 기능만 남는다. 그리고 이런 웹사이트에서 나는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왜일까? 아마도 그곳에서 내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한 ‘주의력의 경제학’이 현대 디자인에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여백이 주는 풍요로움


한국의 전통적인 여백의 미학과 일본의 ‘마(間)’ 개념은 비움이 주는 풍요로움을 오래전부터 인식해왔다. 이러한 동양적 사유는 서구의 스토아 철학, 그리고 현대의 미니멀리즘과 묘하게 공명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는 작은 정원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단지 몇 그루의 나무와 벤치, 그리고 넓은 잔디밭뿐이다. 그러나 그 공간의 여백은 도시의 혼잡함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휴식처가 된다. 복잡한 놀이기구나 화려한 꽃밭이 없어도, 오히려 그 공간은 더 많은 상상력과 평온함을 선사한다.

이것이 바로 ‘덜어냄’이 가져다주는 역설적 풍요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할 때,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시간, 주의력, 그리고 마음의 여유.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 미니멀리즘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소유물이 적을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진다.

최근에 나는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서 불필요한 앱을 지우고, 알림을 최소화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면 어쩌나?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나는 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얻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에 즉각 반응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더 주체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절제의 역설: 과잉의 시대에 ‘덜어냄’이 주는 해방감


우리는 역설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것에 얽매여 있다. 더 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결정 피로에 시달린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적은 것을 깊이 이해한다.

친구의 집들이에 갔을 때, 그의 집은 놀라울 정도로 비어 있었다. 필요한 가구만 있을 뿐, 장식품이나 잡동사니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삭막하다고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공간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곳에는 ‘물건을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 친구는 말했다. “물건이 적으면 청소도 쉽고, 이사도 쉽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

에픽테토스는 “자유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 더욱 큰 울림을 준다. 불필요한 욕망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이러한 절제의 미학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애플의 초기 광고 “Think Different”는 최소한의 텍스트와 이미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언어의 절제가 오히려 더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문체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지만,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하고 느낀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법이다.


실천으로서의 덜어냄: 현대인의 스토아적 태도


이제 질문은 “어떻게 이런 철학을 실천할 것인가”로 향한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달리, 우리는 소셜미디어와 끊임없는 소비 유혹에 둘러싸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덜어냄’을 실천하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몇 달 전, 나는 ‘100가지 물건으로 살기’ 챌린지에 도전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하나씩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물건을 덜어낼수록 나는 더 풍요로운 느낌을 받았다.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물건을 정리할 때 “이것이 기쁨을 주는가?“라고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질문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외부 사물에 대해 던졌을 법한 질문과 닮아있다. 그들은 “이것이 나의 내면의 평정에 기여하는가?“라고 물었을 것이다.

디자인 영역에서도 ‘덜어냄’은 단순한 미학적 선택을 넘어선다. 건축가 존 파우슨은 “단순함은 어려운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제거할지 결정하는 과정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철학적 작업이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메뉴가 단 다섯 가지뿐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선택지가 적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의 철학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어설프게’ 하기보다, 몇 가지를 ‘완벽하게’ 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채우는 삶에서 비우는 삶으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이들이 그 반대편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덜어냄’의 철학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현대 사회의 과잉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자, 인간 본연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진정한 풍요는 외부의 획득이 아닌 내면의 평정에서 온다. 현대의 미니멀리즘은 이러한 고대의 지혜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오랜 친구와 함께 한강변을 걸었다. 그는 최근 고급 아파트에서 작은 주택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공간이 작아진 만큼, 마음의 공간은 넓어졌어”라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내 귓가에 맴돌았다.

결국, ‘덜어냄’의 철학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의력과 에너지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되게 하는 삶의 태도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내면의 자유’와 현대 미니멀리스트들이 찾는 ‘본질적 삶’ 사이에는 2천 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그 핵심 가치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나는 다시 한번 묻는다. “내일의 나는 무엇을 덜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나는 미세한 해방감을 느낀다. 덜어냄은 잃어버림이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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