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강도, 쾌락의 심도

에피쿠로스에서 감성 디자인까지, 감각의 인문학을 따라가는 여정

by 엉클디

인간은 언제나 감각으로 세계를 만났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란 감각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고, 햇살이 따사롭고, 이마에 맺히는 땀 한 방울에도 우리는 삶을 느낀다. 그런데 이 감각이, 단지 본능의 신호나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조직하는 원천이라면 어떻게 될까?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고대 그리스의 한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떠올린다. 많은 이들이 그를 쾌락주의자라 말한다. 쾌락주의(Hedonism), 이 얼마나 오해받기 쉬운 말인가. 마치 감각적 향락에만 몰두하는 인간상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정작 에피쿠로스가 말했던 쾌락은, 고요함이었다. 평온함이었다. 아타락시아(Ataraxia), 곧 마음의 동요가 없는 상태. 그는 외쳤다. 진정한 기쁨은 과도한 욕망을 멀리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친구들과 담백하게 나누는 삶 속에 깃든다고.


그렇다면 이 철학은 오늘의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혹은, 이 사유의 여운이 어떻게 ‘디자인’이라는 현대적 언어 속으로 스며들었을까?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인간이 감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감성으로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에피쿠로스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플라톤은 감각과 이데아 사이의 긴장을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이야말로 세계를 인식하는 토대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초월’이라는 질서를 향해 있었다. 그에 비해 에피쿠로스는, 지상의 삶, 감각의 현장, 일상의 경험을 철학의 중심에 두었다. 신이 아니라, 인간. 저 너머가 아니라, 지금 여기.


그러나 이 깊은 사유는 중세로 오면서 그 빛을 잃는다. 교회와 금욕주의, 구원의 이념 아래 감각은 억눌리고, 쾌락은 죄가 된다. 하지만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르네상스가 열린다. 인간의 몸, 인간의 감각, 인간의 삶이 다시 중심이 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 이름만으로도 감각과 지성,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은가. 그는 해부학을 통해 인간을 보고, 풍경을 통해 감정을 읽고, 그림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했다. 감각은 더 이상 억눌릴 수 없는 존재의 진실이 된다.


근대는 이 흐름을 계승한다. 계몽주의는 이성의 시대지만, 그만큼 감성에 대한 반작용도 거세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낭만주의자들은 눈물로 시를 쓰고, 음악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존재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진다.


그러다가, 우리는 드디어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만나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물건은 많아졌고, 기능은 정밀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삶은 풍요롭지 않았다. 쓸 수는 있지만, 누릴 수는 없는 물건들. 바로 이때, 디자이너들은 묻기 시작했다. “사람은 왜 이 물건에 끌릴까?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그리고 누군가 이렇게 대답한다. “감성이다.” 바로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을 통해 말했다. 제품은 감성을 자극해야 하며, 그 감성은 기쁨과 애착, 그리고 기억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에피쿠로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감각이 삶의 본질이라면, 디자인도 그 본질에 닿아야 하지 않겠는가? 디자인은 단지 기능을 구현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예술이며,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감각의 철학이다. 사용자가 공간에 들어섰을 때,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좋아지며, 어떤 미묘한 울림을 느낀다면—그것이 바로 감성 디자인의 힘이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기술, 가상현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감각은 이제 물리적 세계를 넘어, 디지털의 장에서도 살아 숨 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감각은 어디서 오는가? 감성은 무엇을 향하는가?” 에피쿠로스는 말했을 것이다. “행복을 향해, 평온을 향해.”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도록, 감각할 수 있도록,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디자인이다.


감성은 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맺는 방식이며,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차원이다. 그 감성을 어떻게 조형할 것인가. 그것이 현대 디자인의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오래된 철학자에게서 다시 찾아야 한다. 바로 에피쿠로스. 그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진정,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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