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힘

소크라테스에게 배우는 인간중심 디자인의 비밀

by 엉클디

어느 날 눈을 뜬 아침, 내 손에 쥐어진 새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었다. 첫 화면이 밝게 빛나며 흘러나온 음성 안내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기계는 왜 질문으로 시작할까?”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 날씨는 어떨까?’, 출근길에 ‘어떤 경로로 가는 게 빠를까?’, 점심 메뉴를 고르며 ’오늘은 뭘 먹을까?’라는 무수한 질문들이 하루를 채운다. 이런 질문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떨까? 아마도 톱니바퀴처럼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질문하는 노인, 소크라테스를 만나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시장 한 켠. 수염이 듬성듬성 난 노인 한 명이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 그는 특별한 강의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묻고 또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상대방이 답할 때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라고 다시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2,400년 전 아테네의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기록한 대화편을 읽다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거의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또 질문을 던진다. 마치 미로 속으로 상대방을 이끄는 듯하다.

“난 아는 게 없네. 다만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 뿐이네.”

소크라테스의 이 유명한 말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이는 모든 지식과 이해의 출발점이 ‘무지의 자각’에 있음을 깨달은 깊은 통찰이다. 혁신적인 디자인이 태어나는 순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사용자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겸허한 자각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카페에서 만난 소크라테스와 디자이너


우리 동네 카페의 창가 자리. 한 남자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고심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모바일 앱을 디자인하는 UX 디자이너다. 그의 머릿속은 질문으로 가득하다.

“사용자는 이 기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버튼의 위치가 직관적일까?”

“사용자가 이 앱을 통해 정말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일까?”

이 디자이너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을 따르고 있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중심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의 핵심이다.

인간 중심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사용자의 필요, 욕구, 제약,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게 해결책을 디자인하는 접근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용자는 누구인가?”, “그들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의 일상 속에서 이 제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질문의 방법론은 현대 디자인의 가장 핵심적인 태도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는 이미 2,400년 전에 인간 중심 사고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폰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2007년,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 올라 처음으로 아이폰을 소개했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그것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었다. 터치스크린, 인터넷 브라우저, 음악 플레이어가 결합된 혁신적인 기기였다. 하지만 이런 혁신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애플의 디자인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했다. “사람들은 왜 휴대전화에 좌절감을 느낄까?”, “전화기가 더 직관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버튼이 많은 게 정말 사용자에게 도움이 될까?”

스티브 잡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뭔가를 원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한 진리를 ‘출산’하도록 돕는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필요와 욕구를 ‘출산’하도록 돕는다.


부엌에서 발견한 인간 중심 디자인


나의 작은 집 한 켠, 부엌. 전자레인지 문을 열고 음식을 데우려는 순간, 문득 이 기계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면 내부 조명이 켜지고, 시간을 설정하는 다이얼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 심지어 ‘30초 추가’ 버튼은 다른 버튼보다 크고 눈에 띄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런 디자인이 우연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질문한 결과다. “사용자는 전자레인지를 어떤 상황에서 가장 많이 사용할까?”, “어떤 기능을 가장 자주 사용할까?”, “사용자가 음식을 데울 때 가장 짜증나는 점은 무엇일까?”

이처럼 질문은 좋은 디자인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광장에서 던졌던 질문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인간의 경험과 필요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한다.

질문이 없는 디자인은 독단의 함정에 빠진다

어느 날 나는 새로 산 스마트 TV의 리모컨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수십 개의 버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가장 자주 쓰는 ‘볼륨’ 조절 버튼은 작고 구석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건 분명 사용자에게 물어보지 않은 디자인이다.

소크라테스라면 이 리모컨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정말 사용자가 이 모든 버튼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사용자의 실제 사용 패턴을 관찰해본 적이 있는가?”

질문하지 않는 디자인은 독단에 빠지기 쉽다. 디자이너 자신의 가정과 편견이 사용자의 실제 필요를 가리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의 독단을 깨뜨리려 했던 것처럼, 좋은 디자이너는 자신의 독단을 의심하고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간다.


공감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이 간단한 질문이 갖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인간 중심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공감’이다.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감정, 생각,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 친구는 장애인을 위한 모바일 앱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의 첫 번째 행동은 뜻밖에도 장애인 사용자들을 만나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요?”, “어떤 앱이 있으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까요?”, “지금 사용하는 앱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요?”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다. 이는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시도다.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함께 진리를 탐색했던 것처럼,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한다.


가족 대화에서 발견한 소크라테스적 질문법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단촐한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기 위해 거실에 모였다. 의견은 분분했다. 와이프는 산을, 딸은 바다를, 동생은 도시 여행을 원했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되어보기로 했다.

“당신은, 산에 가고 싶은 이유가 뭐야?”

“글쎄,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구나.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고 싶어.”

“딸, 바다를 선택한 이유는 뭐야?“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편하게 하고 싶어. 그리고 수영도 할 수 있잖아.”

“동생, 도시 여행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

“다양한 음식을 먹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박물관도 가고 싶고.”

질문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휴가에서 원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자연과 문화 체험이 모두 가능한 작은 해안 도시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적 질문법의 힘이다. 표면적인 의견 대립을 넘어, 각자의 내면에 있는 진짜 욕구와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이는 가족 대화에서도, 인간 중심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왜?“라는 질문의 다섯 단계

도요타의 생산 시스템에는 ‘5 Why’s’ 기법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섯 번 연속으로 “왜?“라고 묻는 것이다. 이를 통해 표면적인 문제를 넘어 근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 앱에서 사용자가 이탈하고 있다. 왜?

• 로딩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왜?

• 서버 응답 시간이 느리기 때문이다. 왜?

• 데이터베이스 쿼리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왜?

• 데이터 구조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왜?

• 초기 요구사항 분석 단계에서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속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는 표면적인 증상(사용자 이탈)에서 시작해 근본 원인(사용자 이해 부족)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를 표면적인 의견에서 깊은 통찰로 이끌었던 방식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질문의 힘을 일상에 적용하기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다. 아침에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할 때, “왜 학교에 가기 싫어?“라고 물어보자. 그리고 그 답에 다시 “왜?“라고 물어보자. 이런 대화를 통해 우리는 아이의 진짜 고민(새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든지, 특정 과목이 어렵다든지)을 발견할 수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 중에 “우리가 정말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보자. 이 간단한 질문이 팀을 표면적인 논의에서 핵심 이슈로 이끌 수 있다.

쇼핑을 할 때도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왜 이 제품을 사려고 하는가?”, “이것이 내 진짜 필요를 충족시켜줄까?”, “다른 대안은 없을까?” 이런 질문들은 우리를 더 현명한 소비자로 만들어준다.


질문의 예술, 경청의 미학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우리는 상대방의 답변을 진심으로 경청해야 한다. 질문과 경청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 지인 중,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있다. 그는 사용자 인터뷰를 할 때 특별한 규칙을 세운다. “내가 말하는 시간보다 사용자가 말하는 시간이 3배 이상 되어야 한다.” 이는 질문하고 경청하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경청은 단순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말 속에 담긴 감정, 맥락, 숨은 의미까지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행위다. 이를 통해 우리는 표면적인 요구를 넘어 깊은 필요와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의 힘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함을 의미한다.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내가 디자인한 이 제품은 정말 사용자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가?”, “나는 내 편견이나 가정에 기반해 디자인하고 있지는 않은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기 성찰적 질문은 우리를 더 나은 디자이너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킨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자신과 타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이유와 같다.


질문하는 용기,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


질문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때로는 약점으로 여겨진다. 특히 전문가로서,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항상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그리고 그 무지의 인정이 모든 지혜의 시작점임을 보여주었다.

진정한 인간 중심 디자인도 이와 같다. “우리는 사용자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겸손한 인정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이다. 이런 접근법은 독단과 가정에 기반한 디자인보다 훨씬 더 사용자의 실제 필요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의 소크라테스


오늘날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기술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스마트폰, AI 비서, 자율주행차… 이런 첨단 기술들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윤리적, 실용적 질문들을 제기한다.

“AI가 내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이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접근 가능한가?”, “이 제품이 사용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현대 디자인이 직면한 핵심 과제다.

소크라테스가 2,400년 전 아테네 광장에서 던졌던 “정의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은, 오늘날 디지털 제품을 디자인할 때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이 변해도,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와 필요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더 나은 세상


소크라테스의 질문법은 단순한 대화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지식을 추구하는 태도,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론이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 인간 중심 디자인의 핵심 원칙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디자인이든, 교육이든, 가족 관계든, 질문의 힘을 활용하면 우리는 더 깊이 이해하고,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아는 것이 없다’는 겸손한 자각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경청하는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도구다.

다음에 여러분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먼저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질문을 던져보자.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진짜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다른 관점은 없을까?” 그리고 그 답변에 또다시 “왜?“라고 물어보자. 소크라테스처럼.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질문의 힘이 깃들 때, 우리는 더 나은 제품을 디자인하고,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질문에서 시작하는 인간 중심의 세상.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좋은 질문이 좋은 디자인의 시작이듯, 좋은 질문은 더 나은 삶의 시작이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 일상의 소크라테스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진심으로 경청하고, 함께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여정이 인간 중심 디자인의 본질이자,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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