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장소라도 흔적을 기억하고 있다

에드워드 S. 케이시의 장소론을 가로세로 지르다

by 엉클디

어느 봄날이었다. 잔잔한 햇살이 아스팔트를 가만히 덮고 있었다. 따스하되 요란하지 않았고, 반짝이나 눈부심 없이 묵묵했다. 문득 그런 햇살이 ‘장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감히 그런 물음을 던지게 되었다. 이토록 고요한 순간도 과연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생명 없는 콘크리트 위로 스미는 빛조차도, 누군가의 발걸음과 눈빛이 어루만졌던 자국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 일상은 수많은 길과 골목,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장소들은 정말 ‘비장소(non-place)’일 뿐일까?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말한 대로, 익명성과 임시성만으로 구성된 허상일 뿐일까? 아니다. 우리는 안다. 그 어떤 고속도로 위의 휴게소도, 터미널의 어둔 의자 하나도, 거기서 나눈 한 줄의 대화, 뜨거운 국물 한 모금, 울음을 삼키던 눈빛 하나로, 기억과 감각이 소용돌이치는 생생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이것이 바로 『장소의 운명(Place’s Fate)』이 던지는 질문이다. 장소는 어디로 가는가? 기술은 공간을 가속화하고, 자본은 공간을 재단한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된 건물들은 해체되고 분절된다. 지역의 기억은 거대한 아파트 브랜드로 포장되어 표백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가?


그런데 여기서 질문은 바뀐다. 장소는 사라지는가, 아니면 우리가 잊고 있는가?


공간의 기억, 감각의 지층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말했다. 공간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실천의 결과이며, 표상(representation)이며, 상상(imagination)이다. 즉, 공간은 생산된다. 매일의 발걸음으로, 몸짓으로, 이야기로. 이 말을 뒤집으면, 장소는 언제나 새롭게 ‘되쓰기’(re-writing)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체화한 감각으로 공간을 살아간다. 그러니 아무리 제도와 자본이 공간을 점령하더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의 전유(tactics)’로 그것을 다시 살아낸다.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의 말처럼, 우리는 걸으면서 공간을 다시 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새기는 실천이다.


그러니 ‘장소의 운명’이란 말은, 어쩌면 너무 이르다. 아직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장이다. 아직 이야기는 쓰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사라짐과 되살림 사이, 시간의 숨결


이 책이 말하는 장소소멸(placelessness)은 단순한 퇴락이나 파괴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질서가 교란되는 일이다. 수십 년간 쌓여온 삶의 리듬이, 하루아침에 해체되는 것. 이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오래된 길, 익숙한 냄새, 기억 속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라진 장소. 그러나 바로 그 사라짐 속에서, 우리는 되살림의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되살림은 단지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감각의 재배치’다. 다시 걷고, 다시 느끼고, 다시 쓰는 것이다. 비장소조차도, 삶이 개입하면 장소가 된다. 익명의 공간도, 어떤 서사가 덧입혀지면 관계망을 형성한다. 장소란, 그렇게 생성되는 것이다.


토포필리아(topophilia), 혹은 장소를 사랑한다는 것


사람은 장소를 사랑할 수 있다. 아니,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어떤 이는 이를 ‘토포필리아’, 즉 장소애(場所愛)라고 불렀다. 이 사랑은 로맨틱한 감상이나 추억의 향수만이 아니다. 그것은 장소가 내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뿌리의 감각이다. 장소는 그저 배경이 아니라, 주체의 일부이며 실존의 일부다.


그렇다면 묻는다. ‘장소의 운명’이란 과연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 안에서 매일같이 다시 쓰이고 있는가?


장소의 윤회, 삶의 감각으로 되살아나는 시간


장소는 윤회한다. 오래된 집 한 채, 쓰러진 나무 한 그루, 금이 간 벽의 그림자조차도 시간을 껴안고 다시 깨어난다. 우리 삶의 감각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장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장소는 무대가 아니라, 배우다. 그것은 말없이 우리를 기억하고, 가만히 우리를 품는다.


그러니 이제 다시 걷자. 골목을 걷고, 흔적을 들여다보자. 여행지에서 사진보다 오래 남는 것은 바람이고, 냄새이고, 그 순간 나눈 말 한마디다. 그 모든 것이 장소다.


『장소의 운명』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장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단지 공간적 좌표가 아니라, 감각의 자리, 기억의 포개짐, 관계의 망울이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레 대답해본다. 장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시 말 걸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그 말을 붙잡고, 다시 걷는다면, 장소는 언제나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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