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존재, 떨리는 세계: 토머스 네일의 운동존재론에 관하여
존재란 무엇인가.
철학은 이 물음을 수도 없이 되뇌어왔다. 정지된 형태로, 닫힌 개념으로, 때로는 신의 형상으로. 그리하여 우리는 늘 ‘있음’이라는 상태로 존재를 상상해왔다. 그러나, 그 물음이 정녕 제대로 던져진 것일까.
존재는 멈춰 있을 수 있는가. 아니, 존재란 원래 멈춰있는 것인가. 여기, 토머스 네일이라는 사상가가 있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존재는 움직임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움직인다’는 것이며,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흐름 속에서 잠시 형태를 갖출 뿐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낯설고도 강렬한 사유인가. 그는 『Being and Motion』이라는 책에서 이 물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우리가 오래도록 지켜온 정태적 존재론(static ontology)을 뒤흔든다.
그렇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흐름이다. 그것은 접속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물체’나 ‘개체’라는 개념 속에서 존재를 파악해왔다. 그 안에 들어있는 본질을, 특성을, 정의를 찾아내는 것이 존재론의 임무라 여겨졌다. 그러나 네일은 그 모든 정의의 배후에 운동(kinetics)이 있다는 사실을 들춰낸다. 존재는 정지된 무엇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변형하고 전개해가는 ‘운동의 리듬’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존재의 본질적 기저를 다시 써야 한다. 토대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존재’는 더 이상 ‘물질’도, ‘정체성’도 아니다.
그것은 경계 없는 상호작용이며, 되기(becoming)이며, 지속(duration)이다.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와 가타리를 떠올리게 된다. “되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멈춰 있지 않음이며, 정체되지 않음이며, 경계 너머로 흘러가는 흐름이다. 베르그송이 말했던 지속 역시 마찬가지다. 단속적 시간이 아니라, 내재적인 흐름으로서의 시간. 네일은 이 흐름의 존재론 속에서,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고정되었던 존재들을 해체한다. 존재란 흐름 속에서 언제나 다시 태어나고, 소멸하며, 연결된다.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 사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상은 정지와 고정, 확정된 정체성에 기대어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정치도, 제도도, 법도, 교육도, 심지어는 사랑도. 우리는 안정성을 신성시하고, 불확실성을 불안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토머스 네일의 주장은 일종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는 혼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지’는 허구이며, ‘운동’은 본질이다.
우리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었다.
세포는 진동하고, 신경은 흐르고, 정체성은 유동한다.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요동하고 있으며, 그 요동이야말로 존재의 진실이다.
이러한 존재론은 단지 철학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현실에도 깊이 개입한다.
정주(定住)의 신화, 국가의 경계, 시민권의 고정, 남성과 여성, 인간과 비인간, 주체와 객체.
모든 이분법은 운동 앞에서 허물어진다.
이주(migration)는 새로운 존재의 형식이다.
유동적 정체성(fluid identity)은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움직임을 통제하려 하고, 감추려 한다. 왜인가?
운동은 불안정성으로, 예측불가능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측불가능성이야말로 삶의 본래적 조건이 아니었던가.
토머스 네일은 이 숨겨진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하자고 우리를 부른다.
존재의 본질이 운동이라면, 모든 것은 열려 있다.
존재는 과정을 통과하고, 다른 존재와 만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바꾸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움직임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단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감각하고, 거기서 새로운 앎의 구조를 창출하는 일.
존재가 움직임이라면, 사유도 움직여야 한다.
고정된 인식틀, 완결된 체계, 닫힌 언어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유 자체가 떨림으로, 리듬으로, 연결로 작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더 이상 “무엇인가”에 집착하지 말고,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존재란 그런 것이다.
완결이 아닌 생성.
정체가 아닌 변화.
단독이 아닌 관계.
정태가 아닌 흐름.
그러니,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정치는, 우리의 제도는, 우리의 디자인은, 우리의 예술은, 우리의 삶은
이 무수한 흐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존재는 언제나 경계를 넘어 흐른다.
우리의 사유도 그 경계 너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