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의 디자인

넘침을 덜어내는 존재의 기술

by 엉클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디자인에 완전히 포획되어 있다는 것을.


플라톤이 완벽한 이데아를 그리며 세상을 틀에 맞추려 했고,

데카르트가 차가운 해부용 칼로 세계를 기하학적 조각들로 잘라냈다.

그 흐름이 칸트를 거쳐 근대 산업과 결탁하면서 '좋은 디자인'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를 소비의 쳇바퀴 속으로 밀어넣었다.


디자인은 언제부턴가 통제의 기술이 되어버렸다. 우리를 길들이고 조종하는.



'넘치고 넘쳐서 질식할 지경'

1년마다 새로운 버전의 아이폰이 나온다.

패션계는 작년 옷을 구닥다리로 만들어버린다.

온 세상 앱들은 똑같이 생겼다. 이 모든 게 우리 일상을 점령했다.


결과는? 쓰레기 산더미와 멸종 위기다. 우리의 감정은 쇼핑카트 속 가격표로 전락했고, 진짜 관계는 물건들 뒤에 숨어버렸다.


넘침의 슬픔이 현대 디자인의 고질병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둘러싸여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



'노자가 말하는 비움의 힘'

노자가 말했다. "도는 허에서 만물을 낳는다."


이건 허무주의가 아니다. 역동적 생성의 이야기다. 물을 보라. 가장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가면서도 모든 생명을 살린다. 그러면서도 아무와도 다투지 않는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무위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흐름에 몸을 맡기며 세상과 호흡을 맞추는 적극적 감응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덜어냄을 통해 더 큰 생성을 불러일으킨다.



'동서양이 만나는 지점'

토니 프라이라는 학자가 멋진 말을 했다.

"우리가 세계를 디자인하고, 디자인된 세계가 다시 우리를 만든다." 이 순환의 고리가 바로 노자가 말한 자연스러움과 통한다.


앤-마리 윌리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호구성적인 인과관계를 이야기한다.

디자인이 단순한 만들기를 넘어 관계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현대 디자인은 이제 노자의 사유와 서구의 존재론적 디자인이 만나는 지점에서 서로 자라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회복하고 스스로 정화하는 디자인'

'무위의 방식'은 설계 초기부터 불필요한 걸 쳐낸다. 그래서 관계의 여지를 열어둔다.

'자연과 호흡하는 재료들'은 생명의 리듬에 맞춰 관리된다. 물질과 시간이 같은 숨을 쉰다.

'관계의 모델링'은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장소를 동등한 존재로 본다. 디자인 과정이 돌봄의 무대가 된다.


이 세 가지 전략이 넘침의 절벽을 비움의 문턱으로 바꾼다. 회복하고 스스로 정화하는 디자인이 가능해진다.



'본래 디자인으로의 귀환'

디자인이 만물을 휘어잡으려는 기술에서 만물과 함께 흐르는 존재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노자의 무위는 아무것도 안 하기가 아니라 넘침을 덜어내어 생성의 힘을 품는 일이다. 디자인이 삶의 세계 숨결을 품는 '도의 조형'으로 돌아갈 때, 회복과 자정은 저절로 일어난다.


새로운 디자인은 넘침과 단절의 시대를 넘어 관계와 순환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아름다운 것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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