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우는 곳
나는 참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불안을 많이 해결해왔다.
고장난 게 아니라 끊어진 센서처럼 어떤 소리에 자동반사적으로 순식간에 펌핑해대는 심장만은 여전히 어쩔수가 없다.
한강작가의 <눈물 상자>에 아무리 슬퍼도 울지 못하는 할아버지가있다. 울지 못하는 사람의 깊은곳엔 울고 있는 그림자가 있다. 할아버지는 그림자마저 얼어붙어 울지 못했다.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림자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대신 울어주는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꿈이다. 다행히도 나의 그림자는 울 줄 알았다. 꿈은 어린시절 동네를 밤마다 수시로 방문하며 기억나지 않는 그때를 애도하고 있었다. 그 애도를 현실로 끄집어 올려 기억을 더듬고 보듬어 주는 작업이 꿈해석이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 The Complete MAUS >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아버지와 자녀인 작가가 겪는 갈등과 고충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객관적 거리로 떨어져 마치 내 일처럼 바라볼 수 있게 한 책이었다.
내 부모도 일제시대와 전쟁을 통과하며 험난한 세월을 보냈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에게 전해진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깔려 있었던 불안들.
그 위에서 자연스레 자라난 우울.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은 살기위해 그때의 기억을 대부분 잊는다고 한다. 하지만 몸은 기억한다. 그림자는 지울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기억이 많지 않다.
살기 위해 잊었던 기억을 살기 위해 다시 기억해 내야 한다.
꿈이 나를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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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작가는 노동자 계층에서 지식인 계층으로 이동하며 생기는 정체성 이행에 대한 고충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겪은 수치스러운 경험들을 숨기지 않고 글로 써냈다. 과거의 상처가 더 이상 자신을 옭아매지 못하도록.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지난 일들과 이별을 할 수 있다.
감당 할 수 있을 때 상처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면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 것이 되고, 더 이상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므로.
아니 에르노가 계급이동의 고통을 글로 통과했다면, 나는 내면적 정체성의 이행을 위해 쓴다. 불안, 우울, 무기력으로 형성된 낡은 나를 벗겨내기 위해.
프시케는 그리스어로 '나비'이자 '영혼'을 뜻한다. 프시케가 마지막 여정으로 저승에 내려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꿈 글쓰기다. 저승에서 돌아온 프시케는 나비가 된다.
나비는 애벌레 시절을 거쳐 번데기 과정을 지나 새로 태어난다. 과거 애벌래의 특성이었던 몸과 먹이, 살아가는방식은 모두 사라진다. 다른 개체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꿈은 2020년부터 간간이 써왔다. 우선은 2025년 꿈들을 시간 순서대로 풀어보면서 1년의 내면 흐름을 살펴보려고 한다.
* 꿈 해석은 주로 카를 융의 해석과 제레미 테일러, 고혜경 선생님의 책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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