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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경 Oct 20. 2022

거기가 어디든,
행복을 찾아서 직진

갔다, 거기로 :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 9 


[I hope you are happy!]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 뮤지컬 [위키드]를 보다가  

이 한 줄의 대사에 두 눈이 뜨거워졌다.


불 꺼진 방은 참담하지만 딸깍 스위치를 올려 불빛이 환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금은 누그러든다. 

두려움이, 서러움이, 폭발직전의 스트레스이거나 갈팡질팡의 불안함 같은 것들도. 

그러니까 절대로 마음이 깜깜해지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얼른 불을 켜야만 한다. 그래, 그때 내가 그랬다. 떠나 올 때의 내 마음이 불 꺼진 방 같았다. 

그래서 도망을 친 거였다. 되도록 멀고 먼 곳으로.



목적지도 아니고, 종착역도 아니고, 그저 잠깐 눈을 붙이듯 자고 가자 했던 런던. 

거기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맞았다. 아이는 굉장히 분주했다. 쟤, 왜 저래? 나는 궁금했다. 


“얘, 너 왜 그래?”


“내가 뭐?”


“왜 바뻐?”


“오늘이 여기서 보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으로 뭐 할까, 그래서 바쁩니다. ”


“그래. 그럼 계속 그렇게 바뻐라. ”



“그래서... 오늘 우리 어디 가?”


“버스 타러 갑니다.”


“너는 항상 현명한 대답만 들려주는구나.”


“버스 타러 가야 하니까요. 그게 사실이니까.”


“알었다. 궁금증이 싹 풀리는구나.”




나의 투덜거림을 잠깐 즐기던 아이가 오늘은 런던다운 마지막 날을 보내자고 말했다. 

[런던다운]이라는 게 뭘까, 그랬더니 고지식하고 정통적이며 문화적인 어떤 것이랬다. 그런 런던이었군, 

기대가 되길래 나도 나름 격식을 갖췄다. 파운데이션 두드리고, 연지곤지도 좀 하고, 치마도 입고!

 


여지껏 계속 말했던 것처럼, 내가 걔를 옆집 아주머니이거나 놀이방 선생님처럼 띄엄띄엄 키웠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내 아이는 [문화 청년]이고자 하는 것 같더라. 그렇게 컸더라. 

그런데 이상하다. 대체 어디서 보고 배웠지? 

나는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들한테나 푹 빠져 날뛰는, 상당히 얕은 수준의 엄마였는데! 

걔 아빠도 예술이라면 대중예술, 그런 걸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나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여기가 박물관이구나.”


“내셔널 갤러리입니다.”


“그게 그거야.”


“갤러리와 박물관은 다릅니다.”


“너무 시끄럽네.”


“그런데 엄마는 왜 그렇게 큰 가방을 메고 온 거지?”


“그림 몇 점 사게.”


“그렇군.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요.”





내가 낳은 내 아이가 어떤 취향의 어른이 되었는지를 가늠해 보지 못했다. 

나는 그저 걔가 끼니를 놓치지 않았으면 했고, 

추운 날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갔으면 하고 바랐으며 

속상한 일을 겪지 않기를 기도했었다. 

그런데 그날, 그 갤러리에서 

걔가 나와는 많이 다른 취향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간 걔가 고맙기도 하고. 


우리, 왜 이렇게 다르지? 난 부드러운 색감의 디테일한 그림이 좋았다. 

그런데 걔는 장엄하고도 광활한 화면을 가진 그림 앞에 서서 넋을 놓더라. 


“저는 이 그림을 사겠습니다.”


“너, 돈 있어?”


“없지.”


“근데 어떻게 사?”


“입으로만 사지요.”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방방마다를 꼼꼼히 관람하는 동안에는 그저 입이 떡 벌어졌다. 

명화라는 게 왜 명화인지를 눈으로, 가슴으로 확연히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물욕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다 갖고 싶더라. 물론, 절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걔와 나는 각자 좋아하는 그림들을 가방에 담거나 가슴에 담았다. 돈을 조금 더 벌어서 꼭 사 오자고, 했던가. 그 녀석의 말대로 입으로만 사는 건 얼마든지 되니까!




매우 낭만적인 낮을 보내고 밤. 아이가 미리 예매해 두었다는 뮤지컬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갔다. 

그 뮤지컬이 뭔가 하면 [위키드] 였다. 나는 근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한국말로는 안 할 거 아냐.”


“그렇지.”


“그런데도 보는 게 맞을까?”


“몰라도 느끼게 되는 거니까요. 아마 엄만 또 울 걸. 킹콩 영화 보면서도 울었잖어.”


전후좌우 사정을 살필 것도 없이 마음이 동하면, 툭하면, 아무렇게나 찔끔찔끔 울곤 하는  

지 엄마를 꿰뚫어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영어 사정 같은 건 아랑곳 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예매를 한 거겠지. 그래, 뭐... 하는 수없이 갔다. 



아마 절반도 못 알아들었을 거다. 무대 위의 그들이 주고받은 말들을. 나는 남들이 웃으면 웃고, 

남들이 훌쩍거리면 콧물을 들이마셨다. 알아듣는 척을 하려고.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인가, 

아주 또렷하게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I hope you are happy!]


난데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왜 울었던 걸까. 그 말이 뭐라고 그렇게 슬펐을까.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 한 마디가. 

멍청이처럼 앉아만 있던 내가 눈물콧물을 훌쩍일 때 걔가 나를 흘끔거렸다. 

또 우네, 엄마는 역시나 우네, 그런 거였겠지. 



행복을 찾아 떠나는 파랑새처럼, 행복하고 싶어 기어이 찾아왔던 여기에서 행복했다. 

내 꿈속의 노팅힐은 그럭저럭이었지만, 매순간이 행복이었다. 

장을 보고, 밥을 먹고, 문을 열거나 문을 닫고, 세수할 때 혹은 양치를 하는 순간에도 

이러면 행복한 거지, 생각했었다. 

조금 울었던 뮤지컬과 이별하고 극장의 문을 나섰을 때는 역시나 비였다. 

우리는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맞으며 정류장 앞에서 기다렸고, 빨간 버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물이 번져서 왠지 더 낭만적이었던 그 차창 너머를. 


“엄마, 이번엔 또 왜 울었지?”


“좋아서 울었다, 어쩔래?”


“그럼 됐네.”


그래, 그럼 됐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은 고마웠다. 

그리고 기어이 그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나를 끌고 거기로 갔던 내 아이도 참... 고마웠다. 




내일은 우리, 여기에 없겠다. 내일은 우리 포르투, 이 여행의 목적지인 거기에 있을 거니까. 

거기는 또 얼마나 고마울 건지, 얼마나 행복할 건지를 계산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 그 밤은 

밤이었으나 영 잠이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거다.


-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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