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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경 Oct 20. 2022

산다는 건... 스릴러다, 그렇다!

갔다, 거기로 :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 10


종잡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무엇을 맞닥뜨릴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는 게 무섭다는 거다.  



사람들은 간혹 칼을 갈고 있다고 말한다. 원하는 그것을 반드시 이뤄내고 싶을 때 그런 말을 한다.  

섬뜩하게 치열해야만 쟁취할 수 있으니 그렇겠지. 아마도 사는 게 그런 건가 보다.

떠나오기 직전, 업무 차 제주에 갔었는데 오일장이 서는 어느 시장 끄트머리에 대장간이 있더라.

낫이랑 칼이랑 그런 거. 혼신의 힘을 다해 예리하게 깎아 만든 그것들이 하도 예뻐서

한 자루씩 주머니에 담고 셈을 치렀다. 날카로운 애들을 담으면서 생각했다.

세상이 나를 함부로 여기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라고.



런던을 떠나 이 여행의 목적지인 포르투까지 가는 데는 비행기로 두어 시간 남짓.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거기에 당도한 것은 저녁 8시가 지나서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려 준 포르투. 기대해라, 내가 기꺼이 행복하게 즐겨 줄 테니.

밤의 포르투는 까만 크레파스 같았지만, 점점이 불빛들이 묻어 있어 아름다웠다.

신사다운 영국과는 사뭇 다른 그림, 생각의 빗장이 확 열리면서 왠지 좀 까불어 보고 싶어진다.

언덕의 나라답게 모든 것이 내려다 보여서 그럴지도.

시원하다. 마치 커다란 사진집을 활짝 펼쳐 놓은 것 같은 시원함.


“와, 좋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데?”


“예에.”


밤의 강변을 걸으며 호들갑스럽게 굴어 봤는데 아이가 너무 시시하게 응대한다. 뭐지?


“왜? 무슨 걱정 있어?”


“아니... 뭐. 집 주인하고 연락이 안 되네.”


“어머! 그럼 어떡해?”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하... 그런데 말이야. 런던 집이 너무 편안했어서...”


“그래서? 그래서 뭐?”


“왠지 좀 싸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계속 그렇게 좋기만 하겠나, 싶고.”


“으이그! 걱정을 사서 하는구나. 엄마 지금 기분 좋으니까 괜히 분위기 깨지 마라.”




초 치지 말라고, 계속 좋기만 할 테니 두고 보라고 하면서 숙소를 향해 갔다.

그런데 나도 점점 뒤꼭지가 저릿저릿해지는  느낀다.  기분은 뭘까. 게다가 불빛 천지였던 

강변의 야경과 동네 골목의 그림은 다르다. 긴장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어우, 여기는 왜 이렇게 깜깜하니?”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아마 그럴 걸!”


“그럼 가로등 좀 많이 해 놓지. 왜 이래! 무섭게.”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쭉 뻗은 길을 걷다가 드디어 기역 자로 꺾인 그 골목,

우리가 살 집이 있는 거기로 들어섰는데! 순간, 헉! 말문이 닫히면서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아이의 짐작이 맞았나 보다.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가 않는 걸까.







“어허, 이거 큰일이군.”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아이가 말했다.


“왜? 왜? 뭐가 큰일인데?”


“이 골목이 벌써 딱 큰일 아닙니까?”


“그래... 맞어. 큰일났어.”


거기는 흡사 테러가 주제인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두세 개쯤의 가로등이 전부여서 가뜩이나 어두침침한데 담장은 부서지고, 

벽은 낙서 투성이며, 덩그러니 놓인 차도 왠지 무시무시했다.


“우리 그냥 돌아갈래?”


“어디로? 런던? 한국? 어쩌자는 거지?”


“아니... 여기가 너무나 무서우니까.”


“뭐,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요.”



공포를 경험하는 경험이란 그리 자주 닥치치 않는다.

그래서 삶의 공포감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준비되어 있지가 않다. 담력도 약하고.

공포감의 극치를 경험해 본 적 없었던 아이와 나는 그 밤, 벌벌 떨렸으나 참았다.

나는 호들갑을 떨면서 참았고, 나보다 어린 걔는 비교적 덤덤하게 참았다.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하면서.



톰인지, 톰슨인지 하는 주인이랑 통화를 마친 아이가 기다려야 한댔다. 15분 안에 도착할 테니

꼼짝 말고 있으라 그랬단다.

그 양반이 우리한테 꼼짝하지 말라 그러지 않았어도 나는 이미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몸이 딱 얼어붙어서. 나 원, 참! 게다가 어찌어찌 열쇠를 받고 문을 열었더니 S자로

얄궂게 휘어진 계단이 등장했다. 집채만 한 캐리어를 번쩍 들고서 그 계단을 올라야만 하는

난국에 봉착한 셈이었다. 이런, 십장생, 십색볼펜! 막 되먹은 욕이 솟구쳤다.




하지만 나는 이 집에 대해 뭐라고 입을 댈 자격이 없다. 여기에서 묵자고 우긴 사람이 나였으니.

합리적인 가격에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공간이 감성적인 느낌이어서 골랐다. 그런데 아이는 자꾸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왠지 별로일 것 같다면서 반대표를 행사했었다.


“싸잖아. 그냥 하자. 이 집으로!”


나는 단호하게 결정했고, 담대하게 예약 버튼을 눌렀었다.





생각보다는 깨끗하네, 하면서 방으로 들어섰지만 벽에 붙은 컴컴한 그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앉으면 흔들거리는 침대도 불안했다. 아아, 그냥 다 싫다.   


“밥은? 배 안 고파?”


“엄마 배고픈가? 나는 뭐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나도 배 안 고파.”


“그냥 빨리 잡시다. 그게 낫겠어.”


두려운 기분을 지우려면 얼른 자야 한다. 생각 같아서는 아이한테 나란히 자자,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이는 더블 침대가 있는 방, 나는 두 개의 얇은 침대가 있는 방. 그렇게 정하고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세수하고, 양치하고, 옷 갈아입고 나서 집안을 돌아보니 상당히 조악한 형태와 크기의 매트 같은 게

조그만 집을 채우고 있다. 뭘 또 이렇게까지 이러나. 집주인이 카페트 회사에 다니나? 아니면 결벽증? 

그것도 아니면 뭔가 숨기거나 덮어 두어야 할 게 있는 건가?

추리에 추리를 더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이가 들어간 방에서 조금조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쌕쌕, 도로롱.

그 소리를 듣자 살짝 안심이 됐다. 잘 자네, 부디 계속 잘 자라.

나도 나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물론, 좀처럼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아침. 어수선한 밖의 소리에 눈을 떠서는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 봤다.

어? 생각보다 안 무섭네. 허름한 골목은 여전하지만 햇살이 환하고, 사람들은 분주히 걷는다. 

역시 캄캄하면 무섭지만 밝을 땐 괜찮다. 빛이란 희망 같은 것.

계속 주문을 걸었다. 이만하면 안 무섭다고, 괜찮은 거라고.  

우리를 건들면 누구든 가만 두지 않겠어! 하면서 가슴에 칼을 품고 누웠던 밤이 떠올랐다.

뭐래. 무슨 수로 가만 안 둬? 칼 한 자루도 없는데! 난 진짜 어이없는 인간형이다.  



아이를 흔들어 깨운 뒤 집을 나섰다. 밥 먹으러 가는 거다. 뭐가 됐든 배를 좀 채우고 나면 살아질 거다.

역 앞으로 가면 먹을 게 있지 않겠는가, 하면서 둘이 나란나란히 걸을 때 하늘이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랬다.

간밤은 스릴러였으나 눈 좀 붙이고 다시 보니 견뎌질 것 같다.

여기에서 과연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기기로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이 자리를.


-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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