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다, 거기로 : 너와 함께 가서 더 좋았다 # 9
불 꺼진 방은 참담하지만 딸깍 스위치를 올려 불빛이 환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금은 누그러든다.
두려움이, 서러움이, 폭발직전의 스트레스이거나 갈팡질팡의 불안함 같은 것들도.
그러니까 절대로 마음이 깜깜해지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얼른 불을 켜야만 한다. 그래, 그때 내가 그랬다. 떠나 올 때의 내 마음이 불 꺼진 방 같았다.
그래서 도망을 친 거였다. 되도록 멀고 먼 곳으로.
목적지도 아니고, 종착역도 아니고, 그저 잠깐 눈을 붙이듯 자고 가자 했던 런던.
거기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맞았다. 아이는 굉장히 분주했다. 쟤, 왜 저래? 나는 궁금했다.
“얘, 너 왜 그래?”
“내가 뭐?”
“왜 바뻐?”
“오늘이 여기서 보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으로 뭐 할까, 그래서 바쁩니다. ”
“그래. 그럼 계속 그렇게 바뻐라. ”
“그래서... 오늘 우리 어디 가?”
“버스 타러 갑니다.”
“너는 항상 현명한 대답만 들려주는구나.”
“버스 타러 가야 하니까요. 그게 사실이니까.”
“알었다. 궁금증이 싹 풀리는구나.”
나의 투덜거림을 잠깐 즐기던 아이가 오늘은 런던다운 마지막 날을 보내자고 말했다.
[런던다운]이라는 게 뭘까, 그랬더니 고지식하고 정통적이며 문화적인 어떤 것이랬다. 그런 런던이었군,
기대가 되길래 나도 나름 격식을 갖췄다. 파운데이션 두드리고, 연지곤지도 좀 하고, 치마도 입고!
여지껏 계속 말했던 것처럼, 내가 걔를 옆집 아주머니이거나 놀이방 선생님처럼 띄엄띄엄 키웠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내 아이는 [문화 청년]이고자 하는 것 같더라. 그렇게 컸더라.
그런데 이상하다. 대체 어디서 보고 배웠지?
나는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들한테나 푹 빠져 날뛰는, 상당히 얕은 수준의 엄마였는데!
걔 아빠도 예술이라면 대중예술, 그런 걸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나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여기가 박물관이구나.”
“내셔널 갤러리입니다.”
“그게 그거야.”
“갤러리와 박물관은 다릅니다.”
“너무 시끄럽네.”
“그런데 엄마는 왜 그렇게 큰 가방을 메고 온 거지?”
“그림 몇 점 사게.”
“그렇군.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요.”
내가 낳은 내 아이가 어떤 취향의 어른이 되었는지를 가늠해 보지 못했다.
나는 그저 걔가 끼니를 놓치지 않았으면 했고,
추운 날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갔으면 하고 바랐으며
속상한 일을 겪지 않기를 기도했었다.
그런데 그날, 그 갤러리에서
걔가 나와는 많이 다른 취향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간 걔가 고맙기도 하고.
우리, 왜 이렇게 다르지? 난 부드러운 색감의 디테일한 그림이 좋았다.
그런데 걔는 장엄하고도 광활한 화면을 가진 그림 앞에 서서 넋을 놓더라.
“저는 이 그림을 사겠습니다.”
“너, 돈 있어?”
“없지.”
“근데 어떻게 사?”
“입으로만 사지요.”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방방마다를 꼼꼼히 관람하는 동안에는 그저 입이 떡 벌어졌다.
명화라는 게 왜 명화인지를 눈으로, 가슴으로 확연히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물욕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다 갖고 싶더라. 물론, 절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걔와 나는 각자 좋아하는 그림들을 가방에 담거나 가슴에 담았다. 돈을 조금 더 벌어서 꼭 사 오자고, 했던가. 그 녀석의 말대로 입으로만 사는 건 얼마든지 되니까!
매우 낭만적인 낮을 보내고 밤. 아이가 미리 예매해 두었다는 뮤지컬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갔다.
그 뮤지컬이 뭔가 하면 [위키드] 였다. 나는 근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한국말로는 안 할 거 아냐.”
“그렇지.”
“그런데도 보는 게 맞을까?”
“몰라도 느끼게 되는 거니까요. 아마 엄만 또 울 걸. 킹콩 영화 보면서도 울었잖어.”
전후좌우 사정을 살필 것도 없이 마음이 동하면, 툭하면, 아무렇게나 찔끔찔끔 울곤 하는
지 엄마를 꿰뚫어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영어 사정 같은 건 아랑곳 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예매를 한 거겠지. 그래, 뭐... 하는 수없이 갔다.
아마 절반도 못 알아들었을 거다. 무대 위의 그들이 주고받은 말들을. 나는 남들이 웃으면 웃고,
남들이 훌쩍거리면 콧물을 들이마셨다. 알아듣는 척을 하려고. 그런데 어느 장면에서인가,
아주 또렷하게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I hope you are happy!]
난데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왜 울었던 걸까. 그 말이 뭐라고 그렇게 슬펐을까.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 한 마디가.
멍청이처럼 앉아만 있던 내가 눈물콧물을 훌쩍일 때 걔가 나를 흘끔거렸다.
또 우네, 엄마는 역시나 우네, 그런 거였겠지.
행복을 찾아 떠나는 파랑새처럼, 행복하고 싶어 기어이 찾아왔던 여기에서 행복했다.
내 꿈속의 노팅힐은 그럭저럭이었지만, 매순간이 행복이었다.
장을 보고, 밥을 먹고, 문을 열거나 문을 닫고, 세수할 때 혹은 양치를 하는 순간에도
이러면 행복한 거지, 생각했었다.
조금 울었던 뮤지컬과 이별하고 극장의 문을 나섰을 때는 역시나 비였다.
우리는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맞으며 정류장 앞에서 기다렸고, 빨간 버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물이 번져서 왠지 더 낭만적이었던 그 차창 너머를.
“엄마, 이번엔 또 왜 울었지?”
“좋아서 울었다, 어쩔래?”
“그럼 됐네.”
그래, 그럼 됐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은 고마웠다.
그리고 기어이 그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나를 끌고 거기로 갔던 내 아이도 참... 고마웠다.
내일은 우리, 여기에 없겠다. 내일은 우리 포르투, 이 여행의 목적지인 거기에 있을 거니까.
거기는 또 얼마나 고마울 건지, 얼마나 행복할 건지를 계산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 그 밤은
밤이었으나 영 잠이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거다.
- 다음 회에 계속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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