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빚어낸 한국 문명의 심층적 다양성

시간의 두께와 한국 문명의 다양성

by 김욱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은 ‘출발점’에 가장 농축되어 있다. 현생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가 가장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지닌 지역이다. 남아프리카의 부시맨 집단 내부의 유전적 차이가 유럽인과 아시아인의 차이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아프리카가 인류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물며 수많은 돌연변이와 변이를 축적한 ‘시간의 저장고’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는 단 한 번의 ‘병목(bottleneck)’을 거쳐 제한된 유전 정보를 지닌 채 출발했다. 이후 수만 년 동안 새로운 돌연변이를 쌓을 시간이 부족했기에, 유전적 다양성의 폭은 아프리카에 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유전적 다양성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함수다. 오래된 곳일수록, 단절 없이 지속된 곳일수록, 생명은 더 많은 가능성을 품는다.


이 ‘시간의 다양성’은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영어는 런던의 코크니, 스코틀랜드의 억양, 웨일스, 리버풀의 스카우스 등 수많은 변이를 낳았다. 이는 영어가 영국에서 수세기 동안 축적되고 분화한 결과다. 반면, 미국·호주·뉴질랜드로 건너간 영어는 특정 시기의 일부 언어 형태만을 가지고 출발했기에, 지역 간 편차가 훨씬 적고 언어적 다양성도 낮다.


뉴질랜드의 쿠엔틴 앳킨슨 교수가 전 세계 언어의 음소 다양성을 비교한 연구에서도, 언어의 기원지일수록 음소의 수가 많고, 인류의 이동 경로를 따라 다양성이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언어도 유전자처럼 ‘이동’할 때 다양성을 잃는 것이다. 결국 다양성의 근원은 ‘공존’이 아니라 ‘축적’이며, 시간의 두께가 언어의 풍요로움을 만든다.


문명도 마찬가지다. 불교가 탄생한 인도는 이미 브라만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철학적·종교적 전통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불교는 이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발전했지만, 바로 그 경쟁적 환경 때문에 인도 전체를 장악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힌두교의 부흥에 밀려 인도 내에서는 쇠퇴했지만, 오히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어 그곳 문명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기독교 역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했지만, 유럽으로 전파된 뒤 문명의 중심 종교가 되었다. 반면 그 원산지였던 레반트 지역에는 유대교의 다양한 분파가 여전히 남았고, 그 다양성이 훗날 이슬람교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원산지는 수천 년의 시간이 압축된 두터운 지층과 같기에,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을 낳고 경쟁시키며 다음의 가능성을 잉태하는 ‘살아있는 실험실’로 남는 것이다.


반면 특정 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때는, 그 원산지가 가진 모든 스펙트럼이 함께 옮겨가지 않는다. 특정 시점에 특정 집단이 선택한 하나의 강력한 흐름만이 이식된다. 유럽에서 가톨릭, 동방정교회, 루터교, 칼뱅교, 성공회 등이 경쟁하며 공존한 반면, 아메리카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그 다채로운 종교 생태계 전체가 아닌 자신들의 순수한 신앙 하나만을 들고 갔다. 이 ‘창시자 이념’은 경쟁자 없는 미개척지에서 뿌리내리며 미국 문명의 정신적 DNA가 되었다. 유럽에서 수많은 종파 중 하나였던 청교도가, 미국에서는 문명의 기틀이 된 것이다.


이처럼 유전자와 언어, 문명 모두 원산지에서는 다양성이 축적되고, 전파된 지역에서는 선택된 하나의 문화가 융성하며 다양성을 잃는 경향을 보인다. 다양성은 공간의 폭이 아니라 시간의 깊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제 이 논리를 한국 문명에 적용해보자. 한국은 흔히 ‘단일민족’, ‘단일언어’로 묘사되며 문화적으로 획일적이라고 오해받는다. 그러나 유전적·언어적 다양성의 법칙을 문명에 대입하면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오래됨’을 ‘정체’나 ‘획일’과 동일시하는 것은 시간의 역동적 속성을 간과한 단편적인 시각이다. 오히려 오랜 역사는 풍부한 내적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유전 정보처럼 문화적 요소 — 지식, 기술, 이야기, 예술 양식, 생활 감수성 —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문화적 돌연변이’를 낳는다. 한반도는 수천 년 동안 단절 없이 문명을 이어온 드문 지역으로, 외세의 침략은 많았으나 언어와 문화의 연속성은 끊기지 않았다. 한국의 문화는 외부로 팽창하며 다양성을 희석시키는 대신, 한반도 내부에서 지속적인 ‘내적 분화’와 ‘심층적 발효’를 거듭해왔다.


한국의 음식, 예술, 종교 등은 모두 이런 시간의 발효가 낳은 결과다. 배추김치 하나만 봐도 전라도식, 경상도식, 서울식, 이북식이 모두 다르고, 계절에 따라 수백 가지의 변주가 존재한다. 이러한 시간이 만든 다양성은 종교에서도 드러난다. 고대의 샤머니즘 위에 불교가 자리 잡고, 유교가 사회 윤리의 틀을 세운 뒤, 근대의 기독교가 또 다른 정신적 층위를 더했다. 오늘날 한국은 이 모든 종교가 공존하는 세계적으로 드문 종교 생태계다. 한국은 여러 문화가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다문화’가 아니라, 하나의 뿌리가 시간의 층위를 따라 깊게 분화한 ‘심층적 단일문화’다. 이것이 바로 한국 문명이 가진 힘의 원천, ‘시간의 두께’다.


인류의 많은 고대 문명은 소멸하거나 다른 문명에 흡수되어 그 연속성이 끊겼다. 그러나 한국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문명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단일 언어와 문화의 틀 속에서 문명의 ‘심층적 다양성’을 오랜 세월 축적해 온 극히 드문 사례다. 이러한 깊이는 ‘보편성’을 향해 달려온 현대 문명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류가 세계에서 통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다름’이 아니라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깊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K-콘텐츠는 새롭거나 이국적인 것을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인간관계의 패턴, 정서의 결, 공동체적 윤리의 리듬을 담고 있다. 서구 문명이 산업화와 보편화 속에서 균질화되며 잃어버린 인간적 깊이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며, 오랜 세월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류는 수천 년간 쌓인 시간의 두께로 인한 문명의 다양성과, 그것을 세계에 표현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적·기술적 역량이 마침내 결합한 것이다. 오랜 시간의 축적을 통해 확보한 한국 문명의 고유한 깊이가, 지금 세계와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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