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은 스스로를 가장 가혹하게 비판하는가?

비판은 의무다: 한국인의 '도덕화된 비판'의 역사

by 김욱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자기 사회에 비판적인 민족이다. 자국 상품을 외국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사회적 성취를 칭송하기보다 문제점을 들추어내는 데 더 익숙하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불만이나 냉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판은 애초부터 도덕적 책무로 인식되어 왔다. 비판은 상대를 공격하거나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부 잘못을 바로잡아 공동체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행위였다.


한국인의 자기비판적 성향은 국가 시스템 안에 비판의 의무를 제도화했던 조선시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조선의 언론기관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삼사(三司)는 왕과 대신의 잘못을 교정함으로써 국가의 도덕을 바로 세우는 기구였다. 언로를 막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통제가 아니라 ‘도덕을 거스르는 행위’로 여겨졌다. 비판은 권력 감시의 수단이기 전에, 국가를 정화하는 도덕적 장치였다.


흥미롭게도 조선의 왕들도 비판을 불온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이가 발생하면 “내 덕이 부족하다”며 신하들에게 스스로 구언(求言)을 요청했다. ‘들을 줄 아는 왕’이야말로 도덕적 군주였으며, 비판은 왕의 수양을 돕는 행위였다. 비판은 곧 ‘바른 말’이었고, 긍정보다는 교정이 더 도덕적인 언어로 자리 잡았다. 도덕적 우위를 얻기 위해서라도 한국인은 비판에 치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론’은 단순한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정당한 판단’을 의미했다.


유교 세계관에서 이상적인 인간인 군자는 끊임없는 수양과 교정을 통해 자신을 완성한다. 국가는 그 원리를 확장한 도덕적 유기체였다. 언론의 비판은 군자의 수양 원리가 국가 운영의 원리로 제도화된 결과였다. 한국어에 깊이 새겨진 ‘쓴소리’, ‘직언’ 같은 표현들은 비판을 도덕적 행위로 보는 언어적 유산이다. 개인의 수양 원리가 국가 운영 원리로 확장되면서, 한국 문명에는 ‘비판의 도덕화’라는 독특한 DNA가 각인되었다.


반면 기독교 문명에서 비판은 도덕보다는 자유와 진리에 가까운 행위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며, 최고의 목표는 신을 통한 ‘구원’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구원의 길은 교회의 중개가 아닌 개인의 양심과 신앙 해석을 통해 열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나는 내 양심에 따라 말한다”는 루터의 선언은 신 앞에 선 개인의 자유를 그 어떤 권력도 침해할 수 없다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즉, 서구에서 비판의 핵심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권리였다.


이 차이는 비판을 대하는 태도의 근본적인 차이로 이어졌다. 서구에서 비판은 메시지와 메신저가 분리된다. 비판자의 도덕성이 어떻든 그는 말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비판은 공적 도덕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가 비판할 만한 도덕적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따라붙는다. 메신저의 도덕성이 메시지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 사회에서 이상적인 비판자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대간들보다 세속적 욕망을 멀리한 재야의 선비였다. 벼슬을 탐하지 않고 도덕적 원칙에 따라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정당한 비판자였다. 이 ‘아웃사이더 메신저’의 원형은 근대 이후에도 이어졌다. 군부독재 시절의 재야인사, 민주화 운동의 지식인, 권력 바깥에서 사회를 교정하려 했던 이들이 모두 그 계승자였다.


이 유구한 내부 비판의 전통은 오늘날 K-콘텐츠의 성공을 이끈 역설적인 동력이 되었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D.P.>에 전 세계가 열광한 이유는, 이 작품들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용감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마치 시대의 모순을 고발하는 ‘영상 상소문’처럼, 내부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작품을 빚어냈다.


<기생충>은 ‘반지하’라는 공간을 통해, <D.P.>는 군대라는 폐쇄된 조직을 통해 한국 사회의 치부를 정면으로 겨눴다. “진정한 애국은 찬양이 아니라 교정에 있다”는 한국의 언론 도덕을 구현한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내부 고발 콘텐츠는 더 높은 도덕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만약 한국 사회가 내부 비판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다면,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서구 문명이 비판을 통해 ‘자유’를 확장했다면, 한국 문명은 비판을 통해 ‘도덕’을 세우고자 했다. 서구가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다면, 한국은 권력의 도덕적 책무를 추궁했다. ‘비판하는 자가 정의롭다’는 깊은 믿음은 때로 과도한 도덕적 논쟁이나 메신저 공격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놀라운 속도로 부패를 교정하고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자기비판은 냉소가 아니라, 한국 문명의 DNA에 깊이 새겨진 집단적 자기 수양의 언어다. 그것은 체제 부정이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다. 이 치열한 도덕적 긴장감이야말로 한국 문명이 스스로를 갱신하며 살아남아온 강력한 생명력의 원천이다.



keyword
이전 11화한국에서 대통령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