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아줌마의 힘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는 존재감이 강력하다. 누구도 공식적인 권력을 준 적은 없지만, 그들의 말 한마디에 동네가 움직이고, 이웃이 조정된다. 그들은 싸우면 강하고, 일하면 빠르며, 위기 상황에선 놀라운 협동력을 보여준다. 도대체 한국의 아줌마는 왜 이렇게 강할까? 이건 단순한 성격이나 생활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 강함은 한국 문명의 깊은 구조에서 나온다.
서구 문명의 중심에는 ‘개인과 신’의 수직적 관계가 있다. 기독교 문명에서 ‘좋은 사람’이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신에게 좋은 사람이다. 인간관계의 평가보다 신의 계율, 즉 절대적 원칙을 얼마나 성실히 따르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이 수평적 관계망이 아니라 ‘초월적 관계’에 놓인다. 신과의 관계가 절대 기준이 되고 인간 사이의 관계는 상대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종교적 기반은 세속화된 근대 이후에도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되었다. ‘신을 향한 헌신’은 ‘자아실현’으로 대체되며,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라는 세속적 신앙으로 나아갔다. 서구의 영웅 서사는 이 개인주의 세계관의 문화적 표현이다. 중세의 기사도에서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 현대의 슈퍼히어로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웅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인물이 아니라, 홀로 시련을 돌파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이다. 인간관계는 그저 배경일 뿐이며, 주인공의 성취는 오롯이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달렸다.
반면 한국 사회의 기본 단위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개인은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의 한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좋은 사람’은 신앙적 헌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망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다. 효자, 좋은 며느리, 자애로운 부모, 우애 좋은 형·누나와 같은 사람이 한국에선 영웅이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관계가 도덕의 기반이자 삶의 무대이며, 관계의 조화가 곧 인간의 완성이다.
관계 중심 문명에서 ‘정보’란 관계의 맥락이다. 누가 누구와 가깝고, 어떤 상황에서 불편해하며,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정보는 시간과 교류를 통해 축적되는 귀중한 ‘관계 자산’이다. 이런 자산은 오랜 교류, 세심한 관찰, 감정의 교환을 통해 쌓이며, 관계 자산이 풍부할수록 사회적 의사소통과 갈등 조정 능력이 높아진다. 관계 자산은 여성이 획득하기에 아주 유리한 자산이다. 여성은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며느리, 이웃으로서 관계망의 핵심 관리자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의 관계망은 직장이나 제도와 달리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녀의 성장, 혼인, 손주의 탄생을 거치며 확장되고 강화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관계의 결이 깊어지고, 네트워크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망의 정점에 선 이들이 바로 한국의 ‘아줌마’다. 그들의 ‘거침없음’은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라, 관계망의 최고점에서 모든 것을 조율할 수 있는 권력자의 여유에 가깝다.
그렇다면 한국 남성은 어떨까? 대부분의 남성은 사회적 영향력을 ‘조직 자산’에 집중해왔다. 직장, 군대, 학연처럼 공식적이고 수직적인 네트워크에서 형성되는 이 자산은 규칙과 서열이 명확하며, 조직에 소속되어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이 ‘조직 자산’이 ‘관계 자산’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퇴직과 함께 남성은 정보와 영향력의 원천을 잃고, 가정 내에서도 아내가 수십 년간 구축해온 촘촘한 관계망에 편입되지 못하면 ‘섬’처럼 고립되기 쉽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생애 주기별 자산 그래프를 그려보면, 남성의 사회적 자산은 50대까지 급상승하다가 퇴직과 함께 급락한다. 반면 여성은 40대 이후부터 관계 자산이 절정에 이르러, 가정과 지역사회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떠오른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집안의 실세’, ‘동네의 허브’가 된다.
개인주의 사회인 서구에서 여성이 쌓은 관계 자산은 한국만큼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서구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는 생산성, 경쟁력, 자아실현에 의해 평가된다. 따라서 서구의 중년 여성은 ‘엄마’나 ‘아내’라는 관계적 지위를 벗어나면 존재감이 옅어진다. 이는 서구의 문명적 서사에서 여성의 역할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핵가족화와 자녀 및 노부모의 독립적 생활 방식은 서구 중년 여성이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 안에서 관계 자본을 넓힐 기회를 제한한다.
한국 ‘아줌마’의 강인함은 관계를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낳은 산물이다. ‘아줌마’는 바로 이 관계 문명의 최전선에서 세대와 세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관리자이자,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따라서 한국 문명을 이해하려면, 그 중심에 선 아줌마의 존재를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