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극우가 성조기를 드는 이유

조선 혐오가 키워낸 괴물 : 반민족 보수의 탄생

by 김욱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부끼는 집회 현장을 본 적 있는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외쳐야 할 이들이 외국 국기를 흔들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 보수만의 기이한 풍경이다. 보수주의의 본령이 자국 중심의 공동체와 역사, 전통을 지키는 데 있다면, 한국의 주류 보수는 그 보편적 정의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다른 나라의 보수가 자국 우선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울 때, 왜 유독 한국의 보수만이 외세에 의존하며 스스로의 역사를 폄하하는 길을 선택했을까? 이 글은 한국 보수 주류가 보이는 반민족적 행태의 뿌리를 추적하며, 그 몰상식한 모습 뒤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깊은 오해를 밝혀내고자 한다. 이 기이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태생적 한계


모든 현상에는 뿌리가 있다. 한국 보수가 민족주의의 보편적 상식에서 벗어나 반민족적 행태를 보이는 이유 역시 그들의 ‘태생적 한계’에서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 보수의 주류는 민족의 독립과 민주화를 억압했던 세력, 즉 친일 부역자와 군부독재 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원죄가 그들을 민족 담론의 장에서 영원한 패배자로 만들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은 행정 편의와 반공 전선 구축을 위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관료와 경찰들을 대거 재등용했다. 민족의 염원이었던 친일 청산은 그렇게 좌절되었다. 이들은 이승만 정권을 거치며 기득권 세력으로 완벽히 부활했고, 이후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의 핵심 지지 기반이 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자들이 반공을 명분으로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서고,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억압하는 역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뿌리가 이러하니, 민족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독립운동’과 ‘민주화’라는 서사는 그들에게 불편하고 위협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강조할수록 친일 부역자였던 자신들의 과거가 드러나고, 민주화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수록 군부독재로 권력을 잡았던 자신들의 정당성은 흔들리기 때문이다. 족보를 위조한 집안이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존을 위해 그들은 새로운 싸움터를 만들어야만 했다. 바로 ‘이념’이다. 민족사적 정통성 대결에서는 필패할 수밖에 없으니, ‘반공’을 내세워 모든 것을 재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공 프레임 안에서는 모든 가치가 뒤틀린다. 평생을 조국 독립에 바친 독립운동가라도 북한과의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용공분자’가 되고,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에 맞서 싸운 투사는 ‘체제 전복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반대로, 일제에 부역하여 민족을 배신했더라도 ‘반공’의 편에 서면 ‘구국의 영웅’으로 둔갑하고, 외세에 의존하는 사대주의적 행태마저 ‘현실적인 안보 전략’으로 포장된다.


이런 뒤틀린 역사관 위에서 민족의 자긍심이 설 자리는 없다. 그들은 민족의 저항의 역사를 애써 외면하고, 오직 ‘반공’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개의 기둥에만 매달렸다. 이것이 바로 한국 보수가 민족의 대의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외세의 논리를 대변하며 성조기와 일장기를 흔드는 기이한 행태의 근원이다. 그들에게 민족은 거추장스러운 족쇄일 뿐이다.



위험한 동맹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보할 수 없었던 보수 주류에게는 자신들의 취약한 기반을 보완해 줄 동력이 절실했다. 이념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대중적 지지와 정당성의 공백을 메워줄 동맹 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로의 필요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보수 정치세력과 특정 종교 세력의 기이한 동맹이 맺어진다. 한국 보수의 반민족성을 설명하는 두 번째 열쇠는 바로 보수와 결합한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세력이다.


수천 년간 불교와 유교가 정신적 근간이었던 땅에서 불과 한 세기 만에 기독교가 유력 종교로 자리 잡은 한국의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다. 이 경이로운 성장은 필연적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 세계관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문제의 핵심은 유일신 사상이 가진 배타성이다. 특히 다른 종교나 전통과의 공존을 터부시 하는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의 시각에서, 민족의 역사는 극복해야 할 ‘우상숭배의 역사’로 치부되기 쉽다. 단군 이래의 모든 역사가 신의 뜻을 거역한 죄의 기록이 되는 것이다.


이미 기독교와 함께 출발한 서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그들에게 기독교는 민족의 뿌리 그 자체지만, 우리에게 기독교는 기존의 유구한 정신세계와 경쟁하며 뿌리내려야 하는 ‘새로운 이식물’에 가깝다. 민족을 내세우는 것은 곧 그 근간을 이뤄온 유교와 불교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일이다. 민족이 부각될수록 100년 역사의 기독교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수천 년 된 집터의 주춧돌을 파내야만 자신들의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민족 서사 자체를 무너뜨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민족을 완전히 단절시켜 해방 후 대한민국을 그 전의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민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정치적 시도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구체화 된다. 건국절은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통째로 지워버리는 것만 아니라 3.1운동도 부정하면서 대한민국을 조선과 단절된 ‘근본 없는 국가’로 전락시키려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토록 황당한 역사 단절을 시도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조선으로 대표되는 유교 문명, 그 이전의 불교 문화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는 것이다. 역사를 단절시켜 민족의 정통성을 해체하고, 그 빈자리에 기독교의 유일신 세계관을 세우려는 시도다. 이러한 역사 단절의 시도는 친일과 독재의 원죄를 씻으려는 보수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조선 혐오


친일과 독재라는 역사적 원죄, 그리고 특정 종교와의 결탁이 한국 보수의 반민족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라면, 이 기둥이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양은 바로 우리 사회 내부에 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조선 혐오’라는 자기부정이다.


가장 가까운 과거인 조선 500년은 좋든 싫든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명의 원형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 가족 제도, 사회적 관계망과 예법, 심지어 음식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한국인은 없다. 우리는 지금도 ‘조선’이라는 거대한 유산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 문명의 뿌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경향을 보인다. 조선은 그저 당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우고, 낡은 성리학에 매몰되어 변화를 거부하다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무능하고 정체된 왕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는 명백히 일제가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심어놓은 식민사관의 잔재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를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도구로 삼는다.


이러한 자기혐오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끔찍한 결론에 도달한다. ‘망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을 멸망시킨 일본은 결과적으로 ‘구원자’가 되고, 그에 협력한 친일파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로 둔갑할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 시대의 몰락을 민족 전체의 실패와 동일시하고 선조가 쌓아 올린 유산 자체를 부정해버리니, 우리는 스스로의 위대함을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리고 만다.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한류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과연 이 눈부신 문화적 성취가 수천 년의 역사적 축적과 단절된 채, 해방 이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란 말인가? 스스로의 뿌리를 부정하고 ‘근본 없는 번영’을 주장하는 순간, 그 역사의 빈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친일파와 군부독재 세력이 달려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취가 유구한 민족의 유산 덕분이 아니라, 자신들이 민족의 역사를 ‘단절’시키고 ‘반공’과 ‘독재’로 이룩한 것이라 강변한다. 결국 모든 것은 뿌리의 문제로 귀결된다. 바로 이 ‘조선 혐오’라는 집단적 자기부정이 온갖 반민족적 주장이 활개 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토양인 것이다.



역사를 되찾을 때,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다


친일과 독재에 빚을 진 태생적 한계, 전통과의 단절을 추구하는 일부 종교 세력과의 결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우리 내면의 ‘조선 혐오’라는 심리적 토양까지.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얽히고설켜 민족의 정기를 좀먹는 기형적인 보수를 만들어냈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주장에 단호히 맞서는 일은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가지를 쳐내고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병의 근원을 뿌리 뽑지 않는 한, 독초는 계속해서 자라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과거인 조선을 부정하고 혐오함으로써, 그 역사의 빈 공간에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망령, 그리고 반민족적 종교 세력이 기생할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위대한 유산을 스스로 걷어차니, 그 자리를 가짜 주인들이 차지하려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진정한 해결책은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되찾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조선의 찬란한 문화와 정신적 유산을 인정하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를 매혹시키는 우리의 저력의 바탕이 되었음을 자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뿌리에 대한 확신과 긍지를 가질 때, 민족을 부정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반민족적 보수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물론 보수라는 정치 성향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식민사관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를 혐오하며, 영원히 반민족적 세력의 준동에 고통받을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우리 역사의 거울 앞에 당당히 서서, 그 위대한 유산을 끌어안고 진정으로 건강한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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