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독자적인 문명이다

한국 문명의 뚜렸한 존재감

by 김욱

'한국 문명'이라는 말이 과연 성립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유럽 문명', '이슬람 문명', '유교 문명'처럼 광활한 지역과 수천 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거대한 공동체를 일컬어 문명이라 부른다. 이러한 문명들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공통의 가치관, 종교, 철학, 그리고 생활양식을 공유하며 자신들만의 뚜렷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이 단일 민족으로서 오랜 시간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독립된 '문명'이라 불릴 만큼의 규모와 차별성을 갖추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우리의 이웃 나라인 일본을 독립적인 '일본 문명'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그는 일본이 고유의 종교인 신토(神道)와 천황제, 그리고 서양의 봉건제와 유사하면서도 독특한 막부 체제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유교 문명권과는 구분되는 길을 걸어왔다고 보았다. 즉, 일본은 중국 문명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사회 시스템과 정신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유교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한자를 공유했고, 유교를 국가 통치의 핵심 이념으로 삼았으며,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교류 속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언뜻 보기에 한국은 일본만큼 뚜렷한 문명적 개성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 문명의 독자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리적 인접성이나 표면적인 문화적 유사성을 넘어, 그 교류의 실제적인 빈도와 양상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비교를 위해 유럽 문명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 유럽은 고대 로마 제국의 유산을 공유하며 출발했지만,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로 분열되어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투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정치적 분열 속에서도 하나의 문명적 정체성을 꾸준히 형성해 나갔다. 로마 가톨릭이라는 보편 종교, 지식인 사회를 묶어준 라틴어, 그리고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와 같은 거대한 지적 흐름은 유럽을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광장'으로 만들었다.


백년전쟁이나 나폴레옹 전쟁 같은 격렬한 충돌 속에서도 상인들의 무역은 국경을 넘었고, 학자들의 학문 교류는 끊이지 않았다. 파리 대학의 신학이 옥스퍼드에서 논해지고, 이탈리아의 예술 양식이 프랑스와 독일에 전파되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유럽은 마치 '분열된 거대한 중국'처럼, 국가 간 경계는 존재했지만 사상과 문화가 흐르는 데에는 장벽이 거의 없었다. 이처럼 활발하고 다층적인 상호작용은 유럽을 단일 문명권으로 묶는 핵심 동력이었다.


반면, 우리가 흔히 '유교 문명권'이라 부르는 동아시아의 상황은 유럽과 사뭇 다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베트남(안남)이라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지했지만, 아득한 지리적 거리 때문에 직접적인 교류는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가까운 일본과의 교류 역시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겪은 후 극도로 제한되어, 막부의 사절단조차 한양에 오지 못하고 부산의 왜관에 머물러야 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조공과 책봉이라는 형식을 통해 가장 활발했지만, 이 역시 유럽의 수평적이고 다각적인 교류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1년에 서너 차례 오가는 사신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소통이 대부분이었으며, 민간 차원의 자유로운 왕래나 상업 활동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유교 문명권은 분명 공통의 가치를 공유했지만, 그 관계는 중국이라는 중심점을 둔 채 각국이 '점'으로 존재하고, 그 점들이 '선'으로 희미하게 연결된 모습에 가까웠다. 유럽처럼 촘촘한 그물망 구조의 활발한 교류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서로 다른 문명권으로 분류되는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교류가, 같은 '유교 문명권'이라 불린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교류보다 오히려 더 빈번하고 역동적이었다. 두 문명 모두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라는 고대 문명의 토대를 공유한다. 로마 제국이 분열된 후 유럽은 기독교의 길을,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이슬람의 길을 걸었지만 교류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고, 아랍 상인과 이탈리아 상인들은 지중해를 무대로 활발히 교역했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격렬한 충돌 속에서도 이슬람의 발전된 과학과 철학이 유럽으로 전수되었으며,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심장부까지 진출하며 두 세계를 뒤섞었다. 스페인에서는 무려 8세기 동안 두 문명이 공존하며 독특한 융합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이웃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교류의 깊이 차이는 오늘날 각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 국가들이 오랜 숙적 관계를 넘어 '유럽 연합(EU)'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아랍 국가들이 한때 '아랍 연합'을 꿈꿀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깊은 역사적, 문화적 동질감이 자리하고 있다.


만약 '유교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 중국, 일본이 하나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비현실적인 상상이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현대 국가의 이해관계 때문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체감해 온 연대와 동질성의 깊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하나의 거대한 문명권 안에서 나뉜 '두 형제'처럼 보인다면, 동아시아의 유교 문명권 국가들은 '같은 스승을 모신 서로 다른 제자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자가 공통의 기원을 공유한다면, 후자는 유교라는 단일한 중심점을 각자 지향했을 뿐 수평적 연대감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명적 구도 속에서 한국의 독자성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한국어는 중국어와 어족 자체가 달라 일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며, 이는 민족적, 문화적 사고의 근간이 다름을 의미한다. 둘째, 역사적으로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체화했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성리학은 중국에서 수입했지만, '사단칠정 논쟁'처럼 원산지인 중국보다 더 깊고 치열한 철학적 논쟁을 펼치며 독자적인 사상 체계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 중국은 공산주의를, 한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선택하며 정치, 사회 체제 면에서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현대 학계는 문명을 정의할 때 거대한 규모보다는 독자적인 차별성과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적 지속성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중국 문명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고유한 문명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만약 한 문명이 고립된 채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우리가 굳이 그 문명을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지적은 분명 날카롭고 일리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에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 질문이다. 대중문화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K-현상'에서 볼 수 있듯, 이제 한국은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고유한 언어와 민족을 바탕으로 한 차별성,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지속성,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영향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따라서 '한국 문명'이라는 개념은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니며, 그 독자적인 가치를 논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제 '한국 문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한국 문명을 이토록 독특하고 역동적으로 만들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향한 탐험을 시작하자.



한국 문명 두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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