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문명은 중국 것이 아니다
매년 늦가을 어느 날 오후, 대한민국의 하늘길이 약 35분간 완벽하게 통제된다. 전국의 모든 항공기 이착륙이 중단되고, 이미 운항 중이던 150여 편의 비행기는 상공에서 고도를 유지한 채 대기해야 한다. 이 전례 없는 고요함의 이유는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 듣기평가 때문이다. 혹시 모를 소음이 수험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국가 전체가 잠시 숨을 죽이는 것이다. 이 낯선 풍경 앞에서 외국인들은 놀라움이나 의아함을 표할지 모르지만,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을 사회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한국인들에게 이는 지극히 당연하고 익숙한 연례행사다.
일상처럼 보이는 이 특별한 사건 속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유교적 가치가 현대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곳까지 얼마나 강력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은 유교 문명권 내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가장 철저한 유교 국가다. 특히 조선 왕조는 유교 이념을 국가 경영의 절대적 원리로 삼아 정치, 사회, 문화를 재편했다. 나아가 17세기 명나라가 북방 민족인 만주족의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조선의 지배층은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 즉 중화 문명의 유일한 정통 계승자로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 오랑캐에게 정복당한 중국 대륙을 대신하여 가장 순수하고 완결된 형태의 유교 문명을 보존하고 구현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의 발로였다. 유교는 조선 사회의 구석구석, 즉 왕실의 의례부터 개인의 일상 예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따라서 한국 문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여정은 유교라는 거대한 산을 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교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없이는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사회 구조를 온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이들은 불편한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결국 한국 문명을 알기 위해 중국에서 비롯된 유교를 공부해야 한다면, 한국 문명은 중국의 아류나 부속 문명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혹은 "왜 우리 고유의 것을 탐구하는데 굳이 남의 사상을 파헤쳐야 하는가?" 실제로 유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많은 한국인들은 유교를 단순히 '중국의 것'이자, 우리의 주체성을 억압했던 낡은 사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하나의 사상과 문화가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새로운 토양에서 더욱 깊고 독창적인 뿌리를 내리는 문명 교류의 역동성을 간과하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시선을 유럽으로 돌려보자? 오늘날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법, 철학, 정치, 예술은 그 기원을 대부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문명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현대 유럽을 두고 그 누구도 고대 그리스의 '부속 문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서구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그리스의 철학과 로마의 공화정 정신을 적극적으로 부활시키고, 이를 자신들의 문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삼았다. 오늘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많은 공공건물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있고, 할리우드에서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영화로 재탄생하는 것만 보아도 서구인들이 그 유산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향유하는지 알 수 있다.
반면 동아시아의 풍경은 대조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국가로 평가받는 한국조차 스스로를 유교 문명의 계승자라 내세우기를 주저한다. 심지어 전 세계에 공자학원을 설립하며 유교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중국조차,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유교를 구시대의 악습으로 규정하며 격렬하게 파괴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유교 문명이 인류사에 빛나는 고대 선진 문명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 조화로운 공동체를 향한 열망, 그리고 찬란한 기록 문화는 그리스 로마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적 유산이다. 이러한 선진 문명을 물려받아 그 전통과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 과연 불편하고 부끄러운 일일까?
문명은 특정 국가의 배타적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유교가 중국 땅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중국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불교가 인도에서 비롯되었으나 동아시아의 보편 종교가 된 것과 같고, 기독교가 유대 땅에서 태어났지만 유럽과 아메리카 문명의 중심이 된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오늘날 그리스 정부가 전 세계를 향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리겠는가? 중국은 고대 그리스처럼 '발상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뿐, 그 문명의 주인 행세를 할 수는 없다.
유교라는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명적 자산을 그 어느 나라보다 치열하게 탐구하고, 충실하게 지키며, 나아가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앞다투어 로마의 후계자를 자처했듯, 우리가 유교라는 고대 선진 문명의 가장 강력한 계승자라는 사실은 오히려 자랑스러워 해야할 일이다. 그것은 한국 문명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기둥이자,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깊은 저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