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와 서구의 100년 대결
19세기 중반, 오랫동안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려왔던 유교 문명과 서구 문명은 마침내 격렬한 첫 충돌을 맞았다. 그 서막은 아편전쟁이었다. 산업혁명의 거대한 동력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축적한 영국은, 유교 문명의 종주국이자 수백 년간 동아시아의 중심이라 자부했던 청나라를 너무나 손쉽게 제압했다. 이 충격적인 패배는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 세계관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유교 문명권 전체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서구 문명의 압도적인 힘을 실감하면서, 낡은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로부터 약 50여 년 뒤, 두 문명은 또다시 격렬한 힘의 대결을 펼쳤다. 이번에는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과, 유럽의 거대한 제국 러시아가 만주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격돌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 전쟁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서 구문명의 참패였다. 일본은 대한해협에서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던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그야말로 궤멸시키며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유럽의 5대 열강이자 광대한 제국을 거느린 러시아가, 아시아의 작은 섬나라 일본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아편전쟁을 통해 동아시아를 한 수 아래로 얕보았던 서구 사회는, 불과 반세기 만에 이루어진 유교 문명권의 놀라운 반격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근대 역사상 처음으로 유색 인종 국가가 백인 제국을 이긴 사건으로,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에 근본적인 균열을 낸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40여 년 뒤, 세 번째 문명의 충돌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국으로 급부상한 일본과, 서구 문명의 정점에 서 있던 최강의 산업 국가 미국이었다. 진주만 기습이라는 대담한 선제공격으로 일본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는 듯했지만,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 생산력과 인적 자원은 서서히 전황을 뒤집기 시작했다. 태평양 전역에서 벌어진 처절한 소모전 끝에,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인 원자폭탄 두 발을 일본 본토에 투하하며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일본은 단순한 패배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가 궤멸되는 처참한 결과를 맞았고, 이는 한때 서구 열강을 위협했던 일본식 군국주의 모델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했다.
일본의 패망으로부터 불과 5년 뒤인 1950년, 한반도에서 유교 문명은 또 다른 차원의 저력을 보여주며 다시 한 번 서구 문명을 긴장시켰다. 2차 대전의 승전국이자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은 북한을 거의 점령하고 전쟁 승리를 눈앞에 두었지만, 장진호에서 농민 게릴라 정도로 얕보았던 중공군에게 포위당해 간신히 탈출하는 굴욕을 겪었다. 변변한 장비조차 부족했던 신생 독립국 북한과 중국이 미국 중심의 연합군을 상대로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벌인 끝에, 결국 1953년 휴전선에서 대등한 선을 긋는 것으로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두 문명의 실력대결은 다시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충돌의 무대는 베트남이었다. 먼저 프랑스는 2차 대전 후 식민 지배를 회복하려 했지만,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베트남의 저항에 1만 6천 명의 병력이 포로로 잡히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 뒤를 이은 미국은 더욱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당시 미국은 세계 GDP의 약 4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원해 10년 넘게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전략적 실패를 맛봐야 했다. 두 차례의 베트남 전쟁은 서구의 압도적인 물리력이 아시아 민족의 끈질긴 저항 의지를 꺾지 못함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두 문명 간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표면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은 경제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선 미중 간의 격렬한 무역 전쟁과 기술 패권 다툼은, 19세기 아편전쟁부터 시작된 길고 질긴 두 문명 간 힘겨루기의 현대적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19세기 이후 근대 세계의 발전은 서구 문명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혁명, 과학기술, 법치주의, 민주주의 등 서구 사회의 가치와 제도는 전 세계로 확산되며 인류 문명의 표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일본, 한국, 대만, 중국 등 유교 문명권 국가들은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며 서구 문명에 강력한 도전자로 부상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구와 가장 큰 거리를 보이는 유교 문명권이 어떻게 그토록 빠른 시간 안에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며 다시 세계사의 중심 무대로 복귀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시스템이 국가적 역량을 경제 발전에 효율적으로 집중시켰을 수 있다. 교육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이 우수한 인적 자원을 길러냈을 수 있다. 혹은 서구 문명의 성공 요인을 신속하게 벤치마킹하여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적용한 관료 엘리트들의 능력이 주효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요인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학습하고 변용하는 능력'이다. 서구의 장점을 빠르게 흡수하고, 자신들의 사회적 토양에 맞게 변형시켜 뿌리내리게 한 것이다.
그러나 모방과 추격을 넘어, 한 문명이 진정한 생명력을 갖고 다시 세계사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능력이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치와 시스템을 창출하는 궁극의 힘, 즉 ‘혁신 능력’이다. 유교 문명이 과거의 쇠퇴를 극복하고 다시금 세계무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이는 곧 유교 문명권 스스로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혁신에 성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교 문명은 어떻게 이러한 혁신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혁신의 동력이 된 핵심적인 요소들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