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론 귀신이 없다고 본 조선의 유학자들

귀신이 있다면 그건 순리에 따라 흩어지지 않은 부정한 기운

by 김욱


경연에서 동지사 이첨이 정종에게 설명한 귀신(鬼神)이란 다름 아닌 음양의 이치였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움직임과 고요함, 해가 뜨고 지는 것,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모든 현상이 바로 귀신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기(禮記)』에서 “귀신은 만물의 정기(精氣)”라 하고, 주희가 “귀는 음의 지극함, 신은 양의 지극함”이라 풀이했던 유교의 전통적 해석에 따른 것이었다.


유학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기운이 천지로 흩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유교의 제사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기운이 즉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흔적으로 머문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정 세대, 즉 4대 봉사(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때 제사에서 모시는 귀신은 저 세상에서 불러오는 혼령이 아니라, 천지 음양의 질서 속에 남아 있는 조상의 기운이다.


이첨은 또 귀신이 의식을 지녀 화와 복을 내린다는 민간의 믿음에 대해, 사람이 죽은 뒤에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바른 이치가 아니라 부정한 기운이라고 설명했다. 유교의 철학으로 귀신을 재해석하면서도, 동시에 민간이 믿는 귀신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러한 유교적 재해석은 단순한 철학 논쟁을 넘어,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만약 귀신을 그저 떠도는 혼령으로 내버려 둔다면 왕권은 미신적 혼란에 휘둘릴 수 있고, 국가 제례는 무속화되어 권위가 약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귀신을 둘러싼 정종과 이첨의 문답은, 민간신앙과 유교 철학의 충돌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려 했던 조선의 치열한 고뇌가 담긴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정종 2년 10월 3일 기사(현대어 번역)

경연에서 동지사 이첨과 유교·불교와 노자 및 신선도에 대해 문답하다.


임금이 경연(왕실 학술 토론)에 나아가 동지사(同知事) 이첨(李詹)에게 물었다.


"노자(老子)의 도와 신선(神仙)의 도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이첨이 대답했다.


"신이 예전에는 '노자의 도와 신선의 도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통감강목』을 살펴보니, 노자의 도는 허무(虛無, 비어있고 자연스러움)를 근본 취지로 삼아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비유하자면 집을 떠나 길을 나선 것과 같으니, 생사의 길고 짧음에 얽매이지 말고 서둘러 근본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이는 삶과 죽음을 자연에 맡기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반면 신선의 도는 오래 살고 늙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영약을 먹어서라도 삶을 구하고 죽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한편 불교(석가모니의 가르침)에는 천당과 지옥에 대한 설이 있는데,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천당에서 살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실제로 천당에 가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일찍이 듣기로, 유교에서는 사람이 음양(陰陽) 두 기운을 받아 태어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신선의 도, 노자의 도, 불교의 가르침과 유교의 가르침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


이첨이 대답했다.


"유교의 도는 아득하고 심오하며 알기 어려운 것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 위에 존재하며, 이는 옛 성현들께서 이미 모두 논하신 바입니다. 사람이 천지의 음양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데, 이 음양이 바로 귀신(鬼神)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신(神, 양의 기운)이고, 죽는 것은 귀(鬼, 음의 기운)입니다. 사람의 움직임과 고요함, 숨을 쉬는 것, 해와 달이 차고 기우는 것, 풀과 나무가 피고 지는 것 모두가 이 귀신(음양)의 이치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그렇다면 귀신의 이치가 곧 천지 만물의 이치로구나! 그럼 사람이 죽으면 정신(의식)이 남아 있는가? 또 속담에 '귀신이 화와 복을 내리고, 산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무언가를 가져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도 사실인가?"


이첨이 대답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정기(精氣, 핵심적인 기운)가 흩어지지 않는다면, 책임을 묻고 무언가를 가져가는 이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천지자연의 올바른 기운(正氣)으로서의 귀신이 아니라, 부정한 기운일 뿐입니다."


임금은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경연에서 동지사 이첨과 유교·불교와 노자 및 신선도에 대해 문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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