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줄기차게 공격한 조선의 유학자들
정종 2년 1월 24일의 실록 기사는 조선 건국 초 성리학자들이 불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비판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당시 천문과 기상을 관장하던 서운관은 자연재해와 같은 이변은 부처에게 기도를 올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군주가 스스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하늘의 뜻에 응해야 한다고 아뢰며 논의의 불을 당겼다. 이는 재앙의 원인과 해결책을 불교적 세계관이 아닌 유교적 천명사상(天命思想)에서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주장은 하윤의 발언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하윤은 불교를 '서쪽 오랑캐의 신'으로 규정하며, 그 가르침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인간의 생사와 수명은 정해진 운명에 따르는 것이지 부처가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석가모니조차 자신의 죽음이나 일족의 화를 막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불교의 길흉화복과 인과응보 설이 허구임을 역설한다. 이러한 주장은 불교의 내세적 가르침을 비판하고 현실 정치에 무익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에 정종은 "나 또한 마음을 다해 기도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천하 사람들이 모두 믿는 것은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백성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린 불교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곧바로 권근이 유교적 세계관으로 반박한다. 그는 인간과 세계가 '오행(五行)'의 이치로 구성되며, 이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도덕적 실천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 원소설을 '무식한 것'으로 일축하며, 성리학적 세계관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기사는 조선의 신진 사대부들이 어떻게 유교 이념을 국가 통치의 중심 철학으로 확립하고자 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그들은 불교를 비합리적이고 현실 정치에 무익한 가르침으로 비판하며, 그 자리를 성리학적 질서와 합리주의로 대체하려 했다. 재해에 대한 해석과 대응 방식을 둘러싼 이 논쟁은 단순한 종교 비판을 넘어, 새로운 왕조의 이념적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중요한 철학적, 정치적 논쟁이었다.
정종실록 2년(1400년) 1월 24일(현대어 번역)
서운관에서 다음과 같이 상언을 올렸다.
"재앙과 기이한 현상으로 하늘이 경고하는 것은, 부처에게 빌어서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건대 밤낮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늘의 경고에 응답하소서."
이어서 지경연사 하윤이 아뢰었다.
"부처라는 것은 서쪽 오랑캐의 신입니다. 옛날 서쪽 땅의 사람들이 횡포하고 무도했으므로, 석가가 주나라 강왕 때에 나타나 길흉화복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퍼뜨려 백성을 속이고 달랬습니다. 한나라 명제 때에 이르러 그 가르침이 중국에 들어왔는데, 그 후부터 사람들이 대부분 이를 숭상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불교는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며, 오로지 인과응보와 길흉화복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사람의 나고 죽음과 수명의 길고 짧음은 모두 정해진 운명에 달려 있으니, 부처가 어찌 능히 사람의 목숨을 늘이거나 줄일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주나라 문왕, 무왕, 주공과 같은 성군들이 거의 100세까지 살았는데,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는 일찍 죽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이를 통해 불교가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져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석가모니 자신은 어찌하여 79세의 나이로 죽었겠습니까? 또한 석가모니의 사촌 형제 중에는 도적에게 해를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는 '전생의 업보는 피하기 어렵다'고만 말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전생의 업보를 알았다면, 어찌하여 미리 알려주어 그 화를 피하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전생의 업보를 피하기 어렵다면, 비록 부처라 할지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생의 업보'를 핑계 대며 자기 혈육의 환란을 앉아서 보고도 구원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천 년이 지난 지금의 군신들의 길흉화복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에게 기도하는 것이 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명백합니다."
왕이 말했다.
"그렇다. 나 또한 마음을 다해 기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석가모니의 도를 천하의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지경연사 권근이 아뢰었다.
"사람이 형체를 받아 태어나는 것은 오행(五行)의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행의 이치가 마음에 깃들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이 되고, 오행의 성하고 쇠함으로 운명을 알며, 오행의 조화가 깨지면 병이 생기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가지 원소로 형체를 받아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무식한 말입니다."
왕은 그 말을 옳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