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이 산성으로 올라간 이유

by 김욱

왜 조선의 군대는 전쟁이 발발하면 산으로 갔을까? 태종 때 중국과 여진족, 조선의 군사력을 분석한 실록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기사는 3개 나라의 군대를 분석하면서 조선이 평지의 읍성이 아닌 산성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한다. 당시 정책 결정자들이 주변국의 특성과 우리의 강점을 얼마나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태종 7년 1월 19일 실록 기사 중 군사력 평가 부분(현대어 번역)


"중국(中國) 사람들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갑옷과 무기가 견고하고 날카로우며, 군대의 진형이 정연하고, 지휘 체계가 명확하며, 군율과 명령이 엄격합니다. 또한 상과 벌을 적절히 내리고, 군량미가 풍족하며, 전략과 책략을 즐겨 사용하여 적의 첩자를 역이용합니다. 그리고 전쟁을 오래 끌면서 여러 경로로 동시에 나아가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북방 민족(胡人)들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이 튼튼하고 활이 강하며, 가벼운 식량을 가지고 며칠씩 쉬지 않고 행군합니다. 또한 하늘의 때를 이용하고 지리적 이점을 파악하여, 맹렬히 돌격하고 힘껏 싸워서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 동방(東方) 사람들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견고한 지형과 험준한 지세를 믿고 의지합니다. 정형화된 병법에 얽매이지 않고, 깊고 험한 곳을 골라 산성을 쌓습니다. 그곳에 노약자들을 안전하게 머무르게 하고, 콩과 조 같은 식량을 비축해 둡니다. 그리고 봉화를 올려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샛길을 통해 은밀히 빠져나와 예상치 못한 때에 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물론 평지에 있는 성(읍성)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예로부터 우리 동방 사람들은 평지 성을 잘 지켜낸 경우가 드물었으니, 오직 읍성만 믿고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영의정부사 성석린이 국방대책 등의 시무 20조를 진달한 상서문


이전 14화무례한 중국에 치밀하고 현명하게 대처한 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