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비우고, 속은 꽉 찬- 수업의 힘
수업을 날로 먹는다는 오해 속에는 교사의 치열한 흔적이 숨어 있다.
겉으로는 비워낸 듯 보여도, 그 안에는 이미 모든 준비가 응축되어 있다.
수업을 날로 먹는다는 표현은-
어쩌면 수업을 제대로 준비한 교사만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보이는 수업의 흔적만 따라갈 때,
대체 교사는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존재를 찾기 힘들다.
그 모습만 보면, 교사가 게으른 듯 오해받기 쉽다.
아이들의 활발한 목소리로 가득 찬 교실,
아이들도 교사를 찾지 않고, 자기 이야기와 활동에만 집중한다.
교사는 말이 적고, 아이들은 토론하며 교실을 이끌어간다.
교사는 그저 지켜볼 뿐, 특별히 개입하지 않는다.
만약_ 교사가 진짜 ‘날로 먹고 있다면’
그 수업은 금세 무너진다.
아이들은 방향을 잃고, 수업은 산만해진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만들 뿐이다.
날로 먹는 수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수업을 날로 먹는 것처럼 보이려면,
이미 교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걸 쏟아야 한다.
활동 하나에도 질문의 흐름을 설계하고,
아이들이 부딪힐 난관을 미리 짐작하고,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틈을 남겨둬야 한다.
그 모든 설계가 있어야, 아이들은 비로소 교실의 주인이 된다.
음악에서 ‘여리게(p)’가 바로 그 순간이다.
여리게는 단순히 힘을 뺀 소리가 아니다.
그 앞에 반드시 ‘강하게(포르테, f)’가 있어야만 진짜 여림이 살아난다.
모든 에너지를 응축해 낸 뒤에야 비로소 표현할 수 있는 고요,
그 긴장 속에서만 가능한 떨림.
교사의 역할도 그렇다.
겉으로 물러난 듯 보여도, 그 순간은 이미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뒤에야 만들어진다.
교사가 날로 먹는 것이 아니라,
완벽히 준비했기 때문에 과감하게 물러설 수 있는 것이다.
“수업을 날로 먹는다.”
그 말이 들릴수록,
교실의 주인은 이미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
아이들이 교실의 주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