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이라는 굴레 속에서
교사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교육은 가치를 전하는 일인데,
교사에게는 중립이라는 이름의 침묵이 요구된다.
그 침묵은 과연 교육적인가?
우리는 지금, 교사의 자리를 다시 묻는다.
정책이 바뀌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교육이 실패하면 가장 먼저 비난을 받으며,
무언가를 말하면 ‘정치적’이라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정책을 결정할 권리는 없지만,
그 결과는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위치.
그게 지금 교사가 놓인 자리다.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교사.
하지만 정작 그 중립이라는 말은,
입을 다물라는 신호로 작동하고 있다.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 『교육기본법』 제6조 제1항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교사는 그 원칙을 존중하며 수업을 설계하고, 말을 아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조항이 현장에서는 종종 ‘교사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협소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법이 금지한 건 ‘편견의 전파’이지,
사고와 성찰을 돕는 교육 자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점점 더 침묵하게 된다.
아이들이 사회 이슈에 대해 묻고,
현장에서 교사가 관점을 열어주려 할 때마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사고의 문을 닫는 열쇠로 쓰인다.
교육은 가치 판단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인권을 가르치고, 평등을 말하며, 차별을 멀리하라고 한다.
‘다름을 존중하라’는 말은
결코 중립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그건 하나의 가치이자, 철학이다.
그리고 교사는 그 가치를 전한다.
편향되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다.
교육은 애초에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으며,
그렇기에 교사의 중립성도 ‘침묵’이 아닌 ‘균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중립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교사의 침묵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교육은 침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묻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물음 앞에서 교사가
“말할 수 없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것은 교사의 존재감을 지우는 일이고,
학생의 성장을 방해하는 교육의 포기다.
교사가 지켜야 할 것은 ‘아무 입장도 없음’이 아니다.
진짜 중립은,
여러 시선을 공정하게 소개하고,
학생이 자기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다.
이건 훨씬 더 능동적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말을 아끼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고, 사고를 확장시키는 기술이 더 필요하다.
중립은 무색무취가 아니라,
명확한 균형 위에서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일이다.
교육정책이 나올 때, 교사는 참여하지 못한다.
현장의 목소리는 종종 뒷전이고,
그 정책의 효과가 논란이 되면
책임은 교사 개인에게 향한다.
그리고 교사가 그것에 대해 한 마디 하려 하면
“정치적 발언이다”, “중립을 지켜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그 결과, 교사는
책임은 지지만 발언권은 없는 정치적 천민으로 남는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다.
사회와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와 아이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여야 한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 진짜로 기능하려면,
그것은 교육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중립이 교사를 지우는 말이 아니라,
교사의 균형 잡힌 전문성을 지지하는 말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정치적 천민이어서는 안 된다.
입 다물기를 강요받는 존재가 아니라,
말을 신중히 하되, 그 말로 세상을 확장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정치를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라,
정치적 균형 감각으로
아이들에게 사고의 나침반을 쥐여주는 일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교육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수업의 품격이며, 교사의 삶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