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 같은 믿음에 부딪혀도, 멈추지 않는다
말과 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졌다.
그 너머에는 서로 다른 신념과 시선이 있었다.
오늘, 그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다시 느꼈다.
교사들 사이에도 벽이 있다.
그 벽은 단단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벽돌 대신 오랜 경험과 굳건한 확신으로 쌓이고,
시멘트 대신 익숙함과 관성으로 굳어 있다.
표면은 매끄럽지만, 그 속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돌덩이 같다.
처음엔 그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한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 벽 앞에 여러 번 가로막혔다.
벽은 말없이 서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방향을 바꿀지, 부딪칠지를 매번 선택해야 했다.
국가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 속에서 교사가 자율성을 발휘해 수업을 설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더 나아가 학생 주도성을 기반으로 한 수업을 꿈꾸는 건, 마치 좁은 창문 틈으로 햇빛을 들이려는 일 같다.
의지는 있어도, 빛이 스며들 틈이 너무나 좁다.
오늘의 논의 자리에서는 커피잔이 덜컹거리고, 종이 넘기는 소리가 잦았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반짝이는 그 공간에서도 그 벽은 여전히 선명했다.
“학생이 주도하면 수업이 산만해져요.”
한쪽에서 혼잣말처럼 들린 말은, 날이 바짝 선 종이처럼 단호하게 잘려 나왔다.
그 말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손을 멈췄다.
맞은편에 앉은 선생님이 조심스러운 미소를 띠고 덧붙였다.
“아이들 스스로 하게 하더라도, 교사가 길을 잘 정해줘야 해요.”
그 말속에는 이미 울타리의 경계가 세워져 있었다.
민주시민 교육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교육을 바라보는 눈은 다 달랐다.
어떤 이는 여전히 교사를 ‘전달자’로 규정했고,
학생의 주도성은 교사가 정한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수업의 질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틀 바깥의 가능성을 믿고 싶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방향을 잡으며, 스스로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수업.
그러나 그 생각을 말로 꺼낼 때마다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세워졌다.
표정 하나, 시선 하나가 그 벽돌이었고, 말 끝에 스치는 한숨이 또 다른 벽돌이었다.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길은 지난하다.
합의가 쉽지 않고, 방향이 흔들리고, 걸음이 느리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지난함에 지쳐서도 안 된다.
아이들의 주도성은 선언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매일같이 부딪히는 벽 앞에서, 조금씩 균열을 내야만 한다.
오늘, 나는 그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다시 알았다.
더 오랫동안 그 벽 앞에 서야 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으리라.
벽이 여전히 서 있어도, 나는 내 자리에서 조용히 작은 균열을 내보기로 했다.
언젠가 그 균열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과 질문이 햇빛처럼 스며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