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속에서 시작되는 교실 속 진짜 소통
교실 안에서 아이들의 말이 오가도, 진짜 소통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원래 어렵기에, 우리는 그만큼 애써 노력해야 한다.
소통은 원래 잘 안 되는 것이 정상이다.
잘 이루어지면,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대체로 소통이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뜻이 어긋나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불평을 쏟아내곤 한다.
사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경험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현실은 더 복잡하다.
우리는 학교에서조차 소통을 글로 배운다.
교과서 속 문장과 예시문을 통해 “이렇게 말하면 소통이다”라고 익힌다.
하지만 교실 밖으로 나가면, 소통은 단순한 문장 훈련으로 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흔히 소통을 ‘합의’와 동일시한다.
상대방이 내 제안을 OK 하면 “소통이 되었다”라고 여기고,
반대로 거부하면 “불통이다”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소통의 본질은 그에 있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동의는 개인이 어떤 생각이나 제안을 받아들이는 행위이고,
합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긴 대화 끝에 공동의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동의는 한쪽이 다른 쪽에 맞추는 데 그치지만,
합의는 다름을 드러낸 채 조율하고 조정해 가며 함께 도달해야 한다.
소통은 단순한 동의의 집합이 아니라, 합의를 향해 나아가려는 과정 전체에 깃들어 있다.
수업 속에서도 이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이들이 흔히 접하는 찬반토론은
“찬성하나요, 반대하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결국 상대방을 설득해 동의를 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어느 순간 아이들의 말은 반복된다.
“찬성합니다.”
“저도 찬성합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목소리는 분명 오가지만, 새로운 이해는 쌓이지 않는다.
다름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는다.
논쟁은 다르다.
논쟁은 단순히 상대를 꺾어내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근거와 관점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한 아이가 말한다.
“저는 반대예요. 왜냐하면 이 정책은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러자 다른 아이가 이어받는다.
“저는 찬성이에요. 돈이 많이 드는 건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동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분명히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 순간, 비로소 교실 안에 소통이 일어났다.
소통은 합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소통일 수 있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
힘들어도, 될 때까지, 끝까지.
소통은 애써 이뤄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