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러나 멈춤이 아닌

교실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by 차미레
교실을 잠시 떠났지만, 배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목소리, 학부모의 눈빛, 시민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교실을 만난다.
가르치는 자리에서 물러나, 함께 길을 찾는 자리로 나아가며
수업은 삶이 되고, 삶은 다시 수업이 된다.


올해 나는 학습연구년을 맞아 학교를 잠시 떠나 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함께하던 수업은 1년간 멈췄다.

칠판 앞에 서서 아이들의 눈빛을 바라보던 일상은 잠시 멀어졌지만, 멈춤 속에서 오히려 또 다른 배움의 길이 열렸다.


교실의 대상은 달라졌다.

이제는 전국의 청소년들이 나의 학습자가 되었다.

청소년 특별회의에 모인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청소년들과 함께 1년 동안 정책을 고민하고 만들고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정책이 되어 사회를 움직이는 과정을 곁에서 돕는 일은, 교실에서 느끼던 배움의 감각과 또 다른 울림을 준다.


교실을 벗어나서도, 나는 여전히 ‘수업’을 하고 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서클 활동을 진행하고, 퍼실리테이션을 통해 대화의 장을 열고 있다.

비영리단체와 함께 NGO 활동에 참여하며, “공유냉장고 활성화”와 같은 생활 밀착형 과제부터 내년도 지방선거를 앞둔 정책 제안까지, 삶과 맞닿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경남의 초‧중‧고 학생들을 넘어 전국의 학생들과 학부모, 시민이 모이는 자리, 그곳이 나의 새로운 교실이 되었다.

학교에 출근하지 않을 뿐, 배움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공간은 더 넓어졌고, 나는 퍼실리테이터로서 더 많은 학습자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교사들을 만나 수업에 대해 고민한다.

인구 소멸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의 사립학교 존폐 문제를 함께 걱정하고, 학교를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은다.

청소년 정책을 논의하며, 학부모가 진정한 교육 주체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교사, 학부모, 시민 모두가 배움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돌아보면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르치는 자’에서 ‘촉진하는 자’로.

앞에 서서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묶고 이어주며 길을 찾아가는 사람으로.


그리고 아직도 내 안에는 멈추지 않은 꿈이 있다.

언젠가 더 큰 문제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조율하는 중재자로 서고 싶다.

누군가의 말이 묻히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부풀려지지 않도록,

모두의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교실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수업은 더 이상 칠판 앞에만 있지 않다.

삶 속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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