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시작해, 삶을 바꾸는 자리로
더 이상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로 머물고 싶지 않았다.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그 배움이 삶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촉진자가 되고 싶었다.
그 길은 쉽지 않았지만, 매 순간 나를 성장시키고, 삶의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나는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것을 넘어,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앎을 삶과 연결하도록 돕는 촉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선택은 나를 교실과 수업 속에서 퍼실리테이터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우리 반 교실에서 작은 변화부터 시작했다.
학생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설렘과 기대를 느꼈고, 그 작은 경험이 내게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 되었다.
곧 나는 활동 영역을 넓혀 학교 전체로 퍼실리테이션을 확대했다.
교사 회의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과는 달리, 서로의 의견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회의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때로는 저항도 있었지만,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다.
점차 다른 학교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학생, 교사, 학부모, 때로는 동문까지 참여하는 자리에서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고민했다.
지금은 전국의 학생과 청소년 문제 정책 제안, 학부모 대상 퍼실리테이션 교육까지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다.
그동안 나는 안전한 공간에서 퍼실리테이션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나누는 것이 주된 목표였고, 큰 문제를 해결하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퍼실리테이션은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맛 정도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실제 삶과 직접 연결된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을 때, 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지금 내가 하는 퍼실리테이션은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다.
질문 하나하나, 그것을 이어주는 퍼실리테이터의 언어, 참여자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활동—쉬는 순간이 없었다.
하나의 퍼실리테이션을 진행하기 위해 최소 2주 이상 준비해야 했고,
의뢰자의 요구를 이해하고 설계안을 작성하며, 시연과 피드백, 재시연을 반복했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실전에서 성취감을 느낄 때마다 모든 노력이 값지다는 걸 알았다.
퍼실리테이션을 하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였다.
참여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그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도록 돕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경청이었다.
또한 각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삶의 태도를 존중하는 것이 필수였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지혜가 있으며,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퍼실리테이션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틀린 답은 없고, 개인의 의견이 모여 공동체의 뜻이 된다.
모든 사람은 경청할 권리와 경청받을 자격이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퍼실리테이션의 궁극적 목표는 실천력이며, 이를 위해 참여자들의 공감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이라는 안정적인 테두리 안에서의 활동과 달리,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합의를 만들어내는 순간은 아찔했고, 때로는 짜릿했다.
철저한 준비와 냉혹한 성찰, 수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지만,
목적에 맞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느낀 희열은 퍼실리테이션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퍼실리테이터를 넘어 중재자로 거듭나고 싶다.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 당사자가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며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리.
최근 나는 내 롤모델을 만났다.
아담 카헤인(Adam Kahane), 세계적인 중재자이자 퍼실리테이터다.
그는 수십 년간 극심한 갈등 속 이해당사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합의를 도출해 왔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기술적인 중재가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지혜를 존중하고 연결하며, 공동체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삶의 태도에 있다.
아담 카헤인처럼, 나도 그런 중재자가 되고 싶다.
퍼실리테이션에서 얻은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더 넓은 삶의 현장에서 더 큰 공감과 합의를 만들어내고 싶다.
퍼실리테이션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사람과 사람, 배움과 삶을 연결하는 다리다.
그리고 그 길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