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에서

루틴이 사라진 자리

by 차미레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멍하니 하루를 흘려보낸다.
체크리스트도, 계획도, 오늘 하루를 붙잡지 못하는 그 순간, 삶의 여백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루하루는 흘러가지만, 계획은 없고,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 멈춘 채, 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어도,

나는 시계를 흘깃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

체크리스트도, 해야 할 일도,

오늘 하루를 붙잡지 못한다.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도, 눈앞에 있는 잔조차 온전히 마주하지 못한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가 마음의 무게에 눌린다.


멍함 속에서 알 수 없는 자유가 스며든다.

계획 없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고른다.

시간이 흘러가도 나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삶은 반드시 움직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멈춰 있는 이 여백 속에서도, 삶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문득 수업이 떠오른다.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하루,

그 속에서 나는 늘 계획과 규칙에 묶여 있었다.

각자 다른 아이들의 속도, 다른 감정, 다른 질문들에

나는 언제나 시간과 과제를 맞추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 삶의 여백을 마주한 나는 깨닫는다.

흔들리는 자신을 이해할 때,

비로소 아이들과의 하루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멈춘 하루 속 여백에서, 나는 나를 마주한다.

작은 멍함과 사소한 여백 속에서,

앞으로의 수업과 삶이 조금씩 달라질 것임을 조용히 느낀다.

그리고 이 여백이,

앞으로의 나를 조금 더 여유롭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2화수업, 서로를 비추는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