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너머 질문 수업으로

질문을 끌어내지 않고, 질문을 알아차리는 수업

by 차미레


교실에는 말해지지 않은 질문들이 있다.
교사는 그 미세한 떨림을 먼저 듣는 사람이다.
질문을 더 많이 만드는 수업이 아니라,
이미 떠 있는 질문을 알아보는 수업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어보려 한다.


아침 햇살이 칠판 위에 길게 번지는 순간,

교실에는 어김없이 작은 움직임들이 일어났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가벼운 진동,

말을 하려다 입술 끝에서 머무는 숨 같은 것들.

누군가는 집중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머릿속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아직 말로 꺼낼 수 없는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


그 미세한 파장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질문은 말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질문은 이미 교실을 떠다니고 있었고,

교사는 그 흔적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질문수업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넘어서지 못해 망설이는 교사들을 종종 만났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이끌어내는 게 너무 어렵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은

늘 불안과 책임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흘러나왔다.


그 마음을 안다.

질문을 기다리는 일은 교사가 익숙하게 해온 방식 중 일부를

의도적으로 비워두어야 하는 일이었다.

설명을 조금 덜 하고,

정답을 너무 빨리 건네지 않고,

아이들이 머무는 침묵을 견딜 만큼 느긋해져야 했다.

어쩌면 그 벽의 높음은 기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수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직 자기 안에서 명확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수업을 하고 싶은가?”

“왜 질문을 중심에 두고 싶은가?”

이 목적이 분명해지자

교실에서 마주한 많은 순간들이 이전보다 덜 막막해졌다.

질문은 아이에게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있고,

내가 할 일은 그것을 알아보는 시선을 준비하는 것임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지금 마음에 남는 한 줄만 적어보자”라고 말하면

그 한 줄 속에는 그 순간 아이가 서 있는 자리,

그 아이만의 느린 이해와 작게 흔들림이 담겨 있었다.

어떤 날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점을 찍게 했고,

그 작은 점이 어떤 아이에게는

다음 질문을 끄집어내는 시작이 되었다.


질문수업은 질문을 많이 만들려는 수업이 아니라

질문이 흘러나올 수 있는 자리를 열어두는 수업이라는 것을

교실이 천천히 가르쳐주었다.


질문과 발문을 구별하는 일이 점점 의미를 잃어갔다.

아이의 질문이 내 발문을 바꾸어 놓기도 했고,

내 발문이 아이의 질문을 길어 올리기도 했다.

교실은 어느 한쪽의 질문만으로 움직이는 공간이 아니었다.

서로의 생각이 천천히 밀고 당기며

안전하게 흘러갈 수 있는 흐름이 필요했다.


결국 질문수업의 핵심은

질문을 많이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질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는 것,

그 변화의 감도를 높이는 데 있었다.

아이가 던진 작은 질문 하나가 그 아이의 자리를 보여주고,

그 자리를 알아본 교사가 다시 아이에게 시선을 돌릴 때

배움은 가장 조용한 속도로, 그러나 가장 깊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오늘도 교실 문을 열며

조용히 한 문장을 마음속에 가져간다.

“아이들의 질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떠 있는 질문을 볼 수 있는 교사가 되자.”


질문 너머 질문수업은

그렇게 아주 작은 감지에서 시작되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8화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