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치기

by 차미레
말로 가르치던 교사가
이제는 ‘듣는 법’으로 배우고 있는 이야기


교사의 하루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

“얘들아, 자리 앉자.”

“교과서 펴.”

“이건 꼭 기억해.”

말로 수업을 세우고, 말로 관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가끔, 교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강조해도 아이들의 눈빛은 멀어져 있고,

내 목소리만 공기 속에 흩어진다.

그럴 때 문득 생각한다.

나는 지금, 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떠들고 있는 걸까?


예전에는 말을 잘해야 좋은 교사라고 믿었다.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설명하는 능력.

하지만 수업을 오래 하다 보니 깨닫는다.

말보다 먼저 배워야 하는 건,

듣는 법이라는 걸.


요즘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하나, 둘, 셋.”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친다.


하나, 한 번 말한다.

필요한 만큼만, 명확하게.

말이 많으면 마음이 가려진다.

때로는 설명보다 침묵이, 훈계보다 시선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을 ‘내용’보다 ‘톤’으로 기억한다.

그 말속의 온도를 느끼며 교사를 믿거나, 멀어진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조금 덜 말하자. 대신 더 진심으로 말하자.”


둘, 두 번 듣는다.

하나는 아이의 말, 또 하나는 아이의 ‘침묵’을 듣는다.

말하지 않는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는 사정이 있고,

대답이 없는 자리에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기다려주는 것이

교사의 진짜 ‘듣기’ 아닐까.


어느 날, 한 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그냥 듣고만 있어도 돼요?”

나는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그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조용히 와서 속삭였다.

“오늘은 좀 괜찮았어요.”

그 한마디가 내 하루를 다 비춰주었다.


셋, 세 번 맞장구친다.

아이들의 말에 공감하고, 인정하고, 격려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 말 듣고 보니, 나도 새롭다.”

“좋은 생각이야, 우리 더 이야기해 보자.”

이 짧은 세 마디가 교실의 공기를 바꾼다.


수업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리듬이다.

하나, 둘, 셋.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공감하면,

교실의 박자가 고요하게 살아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고,

나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가르친다는 건 말을 잘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 덜 어리석어지는 일,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덜 판단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센다.

하나, 둘, 셋.

말보다 따뜻한 듣기로,

지식보다 깊은 상식으로,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이 시간의 호흡을 맞춘다.


결국 수업은, 서로의 마음이 들리는 순간에 비로소 완성된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7화지식은 빛나지만, 상식은 세상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