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Episode 1.
말로는 부족했던 아이.
눈빛, 몸짓, 발소리, 그리고 가위 한 자루.
교실의 공기가 바뀐 건, 바로 그날이었다.
2020년 봄.
코로나가 세상을 멈추게 만든 그 해,
하영이는 새 학교로 전근을 갔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복도에 서는 일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이상했다.
담임 배정을 받는 날, 동학년 교사들과 함께 학생 명단이 담긴 봉투를 열었다.
그 순간, 옆반 교사가 봉투를 보자마자 하영이를 바라봤다.
“어라... 수현이가 그 반에 있네요.”
짧고 조심스러운 말.
하지만 말보다 더 많은 의미가 눈빛에 담겨 있었다.
“올해 많이 힘드실 거예요.
1학년 때도 교실이 매일 전쟁터였거든요.”
수현이라는 이름 하나로 설명이 끝났다.
입학식 날 줄을 서던 친구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은 아이.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는, 그 ‘문제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는 교실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등교가 미뤄지고, 온라인 수업만 이어졌다.
수현이도 한동안 학교에 오지 않았다.
정상 등교가 시작된 4월 중순, 마침내 그 아이가 교실에 들어섰다.
그날, 교실 앞을 지나가던 교사들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모두가 한 번씩은 그 아이를 훑어보았다.
수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브랜드로 치장돼 있었다.
심지어 실내화까지.
누가 봐도 ‘있는 집’ 아이.
부모는 둘 다 학원을 운영했고, 수현이는 외동아들이었다.
돈은 넘쳤지만 시간은 없었다.
그 미안함의 보상처럼, 수현이는 화려하게 포장된 채 학교에 왔다.
그러나 포장은 얇았다.
표정은 날이 서 있었고, 말투는 거칠었다.
하영이는 교실 뒤편에서 아이들의 사물함 정리를 돕고 있었다.
그때, 수현이가 가위를 사물함에 툭 던져 넣는 모습이 보였다.
“수현아, 가위는 위험한 물건이야.
사물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넣어야 해.”
“이미 넣었잖아요. 왜요?”
“아니, 다시 한번 선생님이랑 해보자.”
하영이는 차분하게 가위를 넣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자, 이젠 수현이 차례야. 할 수 있겠지?”
“왜요?”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하잖아.”
수현이의 눈빛이 바짝 날카로워졌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입술이 굳게 닫혔다.
그러다 아무 말 없이 가위를 들고 사물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퍽.
던지듯 가위를 넣었다.
“그건 아니지.
던지는 게 아니라, 넣는 거야.
다시 한번 해보자.”
“왜요? 왜 자꾸 시켜요?”
“선생님은 네가 제대로 할 때까지 계속할 거야.”
수현이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러나 하영은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온화한 표정이지만, 단단한 목소리.
그건 단지 ‘훈육’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이 교실에서 무엇이 기준이 될 것인가에 대한.
그 싸움은 열 번도 넘게 반복되었다.
사물함 문을 발로 차는 행동도 있었고,
일부러 한숨을 크게 쉬며 하영이를 자극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하영은 같은 톤, 같은 말로 일관했다.
“그건 아니지. 다시 한번 해보자.”
결국 수현이는 억지로, 정말 억지로 하영이의 방식대로 가위를 넣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며 일부러 쿵쿵 발소리를 냈다.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들려온 작은 소리.
“ㅅㅂㅅㅂ…”
하영은 물었다.
“수현아, 뭐라고 했니?”
“혼잣말인데요.”
“선생님 귀에 다 들리는데, 그건 혼잣말이 아니야.”
그 순간, 교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2년 동안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졌다’.
아이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힐끔거리는 눈빛, 눈을 마주치는 아이들,
입꼬리를 올리는 아이 하나.
웅성거림도 없고, 웃음도 없지만
모두가 느꼈다. 뭔가 ‘달라졌다’는 걸.
수현이도 느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걸.
그 감정은 익숙한 분노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속엔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던 ‘멈춤’과 ‘돌아보기’가,
그를 조금 어지럽게 했다.
하영은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